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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Aug 17. 2023

1. 평범했던 소녀

나는 평범했을까? 그래서 행복했을까?

평범했고 행복한 일상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평범할까봐 걱정하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누구나 평범할 수 있으니까
좀 더 특별해지고자 했는데..

평범한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평범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는 걸 몰랐다.


  어릴 때부터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자신 있었다.

달리기, 배구, 줄넘기, 뜀뛰기 등 뭐든 학교에서 하는 체육에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매번 반 계주 대표를 할 정도로 달리기가 제일 좋았다.


달릴 때 얼굴과 머릿결에 불던 바람..

땅을 디딜 때마다 벅차게 느껴지던 숨소리..


계단이 있으면 단 한 번도 한 개씩 오르락내리락한 적도 없을 정도로 다리가 튼튼했고, 학교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면 계단을 세네 개씩 뛰어다니며 급식줄이랑 매점줄 서는 대장이었다. 운 좋게도 중학교는 집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있는 위치라 준비물을 빼먹고 온 날이면 선생님에게 혼날 수 없기에 쉬는 시간에 후딱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던지고는 준비물을 챙겨 나갈 때면 "으이구 기집애 정말 못살아~~~!!!!“ 하며 웃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렇게 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말괄량이 여자애였다.


딱히 감기 걸려 고생하거나 한 기억도 없고 어디 부러 지거나 금이 가도 잘 모르고 지낸 적도 많다. 한 번은 반 대표로 계주를 하다가 1,2 위를 다투며 뛰는데 1위로 달리고 있던 친구를 제치는 순간 그 친구가 들고 있던 쇠 바통이 내 한쪽 발 복숭아뼈를 내리친 적이 있었다.


‘윽!!’


마지막 계주였기에 있는 힘껏 달렸고 결국 그 친구를 제치고 1위로 결승 라인에 들어오면서 우리 반이 1위를 했다. 마치 영웅이 된 것 마냥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같이 기뻐했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그 후로도 난 어김없이 두세개씩 계단을 뛰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학교를 뛰어다녔는데 가끔씩 복숭아 뼈가 욱신거렸고 알고 보니 금이 가있었다. 금방 낫긴 했지만 아픈 거에 있어서 좀 둔했다.


신체적으로 자신이 있으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존감도 높고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어릴 때의 체력이 중요한 거 아닐까?


몸에 대한 자신감에 파워 E성향이 더해지니 언제나 난 무리에서 앞에 서있기를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 전학도 많이 다녔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매년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방송반, 합창단 지휘 등 리더의 자리가 있다면 그건 내꺼여야만 했다. 그만큼 친구들을 대신해서 벌도 매도 더 많이 맞았지만 행복했다.


리더가 되었는데 반에서 꼴찌를 할 수 있나?


공부는 당연한 것이었다. 리더를 한번 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1년마다 반이 바뀌어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잘 몰라도 리더를 할 만한 당위성이 필요한 법. 성실함을 갖추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건 공부였고 성적이었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로 도출될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행복한 중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빠의 강력한 권유로 미국 유학을 홀로 떠나게 되었다. 내가 일궈놓은 모든 걸 내려놓고 모험을 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별로 주저 없이 떠났다.



친척 한 명도 가족 한 명도 아무도 없는 낯선 땅


덩그러니 이방땅에 놓인 십 대의 평범한 소녀였지만 이제는 미국 기준에서의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에서 그랬듯 미국에서도 나의 신체적 강점으로 낯선 무리를 파고들었다. 영어를 잘 못해도 같이 몸을 쓰고 땀을 흘리며 친구들을 만들었고 한국에서의 선행으로 다져진 수학실력과 파워 E성향으로 리더의 자리에 앉았고 첫 외국인 학생회장이 되었다.


친구들이 생기니 영어는 자연스럽게 늘었고 부모님이 고생해서 번 돈이 헛되지 않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가기 싫은 학원 다니면서 공부했던 한국에서보다 공부할 이유는 차고 넘쳤기에 정말 열심히 했고 매년 올A성적표가 한국집에 도착했다.


행복했고 뿌듯했고 보람찼다.


하지만 인생은 공평하다고들 한다.

가장 행복하고 이대로만 살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때에 나의 다리는 부러졌다.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장점이 순식간에 내 평생의 약점으로 바뀌어 더 이상은 내가 알고 누렸던 평범함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마치 그래야 내 인생도 공평하다는 듯이.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뛸 때의 바람결, 가슴 깊이 헥헥 거리던 숨소리. 이젠 그립다 못해 눈물이 난다.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거기에 그렇게 뛰어 다녔나 싶다


더 이상 난 평범한 소녀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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