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는데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장교 교육기관을 포함하여 9년동안 군생활을 했던 나는 집에 연락을 잘 하지 않았다.
직업의 특성상 명절에는 절대로 집에 내려갈 수 없었고, 휴가도 한달에 한번 나갈까 말까였다.
휴가를 나가더라도 혼자서 있는 시간을 좋아했었기에 집에 가지 않고 숙소를 예약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왜냐하면 집에가면 부모님이 계셔서 쉬는게 너무 불편했기 대문이다.
어렸을때 나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다.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그리고 매우 보수적이었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외박이라는 것은 해보지 못했고, 또 저녁 7시가 되기전에 집에 돌아와야 했다.
20살이 넘어서도 술은 입에도 대기 힘들었고, 술을 조금이라도 먹고 들어온 날에는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물론 통금도 있었다.
어렸을 때는 나를 왜이리도 못믿을까 원망스러웠고, 또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공부도 하기싫었고, 삶의 의지도 크게 없었다. 집안에 갇혀있는 동안에는 다른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때는 오롯이 나의 자유와 나의 행복만 바래왔던 시기였다.
22살에 육군3사관학교에 입대하고나서 나에게는 자유가 생겼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자유가.
부모님은 내가 사관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별다른 이야기는 없으셨다.
그때부터 하지못했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외박이나 방학이 있더라도 하루이틀을 제외하고는 모두 밖에서 보냈다.
집이라는 곳은 나에게 감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임관을 해서도 집에 잘 가지 않았다. 휴가때 몇번 집에 갔었는데 그때 밤 11시가 넘어서 한번 들어왔다가
아버지에게 매우 혼난 뒤로는 다시는 휴가때 집에 길게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는 빈도수가 늘어나다보니 나중에는 1년에 집에 3~4번정도 갈까말까 했었다.
부모님은 내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나를 배웅하기 바빴고, 나는 빠르게 집을 나서기 바빴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올해 전역을 한 나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 일주일정도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부모님의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마주볼수 있었는데,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 1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부모님은 너무도 많이 늙어있었다.
옛날에만 해도 건강하셨던 부모님께서 이제는 나이를 드셨다는게 실감이 났다.
언제 이렇게 주름이 많이 생겼던가.
언제 이렇게 60대로 접어드셨는가.
언제 이렇게 힘이 약해지셨는가.
내가 집안이 엄해도 반항 한번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때부터 힘이 쌔기로 유명했다. 운동도 잘해서 고등학교때까지는 육상부와 야구부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돈을 벌기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모든 꿈을 포기했다.
그렇게 수십년이 세월이 흐른 아버지는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중학교시절 구조조정으로 인해 아버지는 성수동에서 일하던 인쇄회사를 나와 어머니와 함께 떡볶이 장사를 시작하셨다. 가게가 아닌 아파트 5일장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나를 키우는 지난 15년동안 매일매일 무거운 짐을 올리고 내리고, 새벽 1시에 자고, 새벽 5시에 나가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부모님은 나를 키웠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새로운 일을 찾기위해서 책을 읽다가 하나 깨달은 사실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데에는 콘 돈도 필요하지 않고, 빠르게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부모님께서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의 방향성의 변화가 생겼다.
나 혼자서는 이렇게 살아도 되지만, 나이드신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빨리 벌어야 했다.
예전의 나는 부모님을 원망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그 가난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셨는지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사실을 군생활하면서는 외면했다면, 이제는 똑바로 마주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군인으로 전역하고 나서라도 알게되어서 다행이다.
계속 군대에 있었다면 내 마음을 챙기느라 부모님을 챙기지 못했을텐데.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지금이라도 잘 하면 된다.
부모님과 나의 시간은 함께 흐르고 있기에
앞으로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