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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션으로 읽는 미술 Dec 19. 2023

히잡을 쓴 여자

[패션으로 읽는 미술]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

베를린, 캔디, 히잡.. 이 세 단어의 조합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아서였을까, 히잡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전시의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원주택을 개조한  보이는 전시장은 익숙한 가정집 같은 구조였고,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의 통유리에서 내다보이는 마당풍경이 매력적이었다.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

  가지 키워드는 모두 전병구 작가의 회화 작품 제목이다. 풍경, 정물,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들이다. 작가는 주로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물이나 장면을 자신의 회화로 해석하는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베를린, 캔디, 히잡을  여자 역시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대상들이다.


특히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보다는 관찰하는 주체와  순간에 집중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작가의 관점은 루이스부르주아를 연상케 하는 작업에서 단연 돋보이지 싶다. 작가가 그린  회화작품은 그가 루이스부르주아의 조각작품을 보고 '회화-' 것이다. 루이스부르주아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미술가로 바느질, 여성의 신체 등을 매개로 자신의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을 많이 선보였다. 워낙 유명한 미술가이고  알려진 작품들이기에 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었더라면 보자마자 루이스부르주아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병구 작가의 캔버스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관람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 전병구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인가? 루이스부르주아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인가?

- 루이스부르주아의 작품을 그대로 그린 이 작품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 조각을 회화-한 이 작품은 회화로 바라봐야 할까? 조각을 떠올려야 할까?


관람객들은 기존의 작품을 현재의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히잡을  여자

유희적인 관점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특별한 시선 때문일까 히잡을  여자를 그린 그의 작품 역시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히잡은 아랍어로 '가리다'라는 의미로 이슬람 여성의 전통 복식이다. 지역, 종교 성향, 나이, 계층 등에 따라 모양과 색이 다양하나 일반적 우리의 인식에 히잡은 얼굴만 드러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리는 두건으로 인식된다.


2022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된  의문사한 22살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떠오른다.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 내기 위해 히잡을   앞머리를 살짝 보이게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미니 역시 머리카락이 살짝 보이게 히잡을 착용했을 뿐인데 도대체 그녀는  고통스럽게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


이를 계기로 그녀는 2022 이란 시위의 상징이 되었고, 같은  독일 베를린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국가로 히잡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1995  아프가니스탄 출신 교사 루딘(Fereshta Ludin) 독일 법정에서 일어난 '히잡 금지 조치' 관련 소송이 있다. 이는 독일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기독교적 보편주의 가치관에 따라 비서구권을 타자화하는 시각과 젠더의 시각이 있다. 특히 여성의 억압 철폐를 주장하는 서구의 페미니즘 입장에서 히잡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장치로 간주되었다. 이에  히잡은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 강요와 억압을 당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기에 더해 911 테러로 인해 무슬림은 '악마' 낙인찍히게 되었고, 이에 반이슬람 정서가 고조되면서 히잡에 대한 시선은 더욱 부정적으로 기울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을 포함한 여러 서구국가에서는 히잡이 많은 논란을 일으켜왔다.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사회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사회


  


책 같은 무언가를 들고 깜깜한 곳을 바라보고 서 있는 히잡을 쓴 여성.

그녀를 눈에 담은 작가의 시선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다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옷의 일부일 수 있는 히잡의 형태가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히잡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히잡은 서구의 기독교적인 보편주의에 따라 가부장적인 억압의 장치일까?

벗으라는 주류 세력에 맞서 저항하는 주변문화, 문화의 다원화라는 의미의 생산일까?

종교적 자기 규제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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