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19. 2024
당신이 함께 있든 없든 ㅡ 수필가 한연희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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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함께 있든 없든
수필가 文希 한연희
몇십 년 동안 함께 일했던 친구 부부가 몇 년 전 미국에서 은퇴를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의 4월 , 한국에 나왔다.
코로나 격리기간을 무사히 마치느라 몇 날을 갑갑하게 보냈고 5월 11일 입양의 날 행사를 마친 후 27일에 출국을 한다. 기사 없이 살던 시절이었으면 벌써 여러 번 만나 과거 속 추억을 더듬었을 것이다.
마침 남편의 휴가가 24일까지여서 캠핑을 마치고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친구 부부도 짬이 난다기에 점심을 스타필드 안성에서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못 만나고 그냥 가는가 싶어 서운하던 터라 더욱 설레어 준비하고 대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남편이 못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 나 못 가겠어." "그러면 안 되지. 이미 약속을 한 거잖아. 오늘밖에 시간이 없대, 오늘만 봐줘라." 요지부동이다.
기사가 대책 없이 나자빠질 때 사모님은 어찌해야 하는가? 백날 잘해주면 뭣 하는가. 철부지 애도 아니고 우선순위가 어이없이 밀리는 상황이다.
이제 내가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약속 취소하고 기사를 평생웬수로 알 박기 할 것인지 아니면 자가운전을 선택하여 기사를 하루 종일 불안에 떨게 할 것인지 정하면 그만이다.
록 음악 최고의 명곡 문장이 떠올랐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이 있든 없든, 기사가 있든 없든 나는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살고야 말 거다.
차를 타고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처럼 경로를 여러 번 사전 검색하고 졸음 쉼터와 휴게소 검색까지 마쳤다.
감정이 끓어오르면 소리를 질러댔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이 있든 없든
With or without you"
2021년 이후 처음으로 진통제를 먹고 복대를 두른 후 자가운전으로 고속도로를 탄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니까 숨통이 확 트인다.
"내가 못 갈 줄 알았지? 이 바보 바보 바보야! 여태껏 잘해준 거 한 입에 톡 털어 넣은 거 알고나 있냐? 꽉 채워놓은 감정 통장 바닥났다고, 바닥이 뭔지는 아냐? 이 바보 멍충아! 어디 한 번 온종일 불안에 떨어봐라!" 졸음 쉼터, 휴게소마다 차를 세워 놓고 누워 편히 쉬었다 출발하니 운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해 보고 싶은 사람 만나 점심 먹고 차 마시니 혼자여서 도리어 좋았다.
평생 기사 없이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던가. 극단적인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안전 제일주의를 추구한 족쇄, 구속이 과했다. 갈 때처럼 올 때도 쉬엄쉬엄 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어디야? 오고 있는 중이긴 해? 언제쯤 도착할 거 같아?" 기사가 사모님이 언제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가다가 휴게소에 누워있는데 언제 도착할진 몰라요. 기다리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살 테니까." 6시 30분쯤 동네 입구에 도착했는데 훤하다.
집이 아닌 복하천변으로 가서 주차를 해놓고 누워있었다.
기사 속을 숯검정으로 만들어 볼까?
밤을 지새워도 좋을 것 같았다.
30분쯤 지났을까? 누가 차를 두들긴다.
남편이 개와 함께 서 있다. 길을 몇 번 잃으면서 깔았던 위치 추적을 사용한 모양이다.
둘이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라니,
"당신 삐쳤어?"
"삐지긴 누가 삐쳤다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마셔."
"에이~ 삐쳤네, 뭐."
산책을 마치고 안 갈 거냐고 묻는 걸 쌩깠더니 그냥 간다. 점점 어둠이 깔리고 캄캄하면 길을 잃을까 봐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누워있었다.
심란한 음색의 전화가 왔다.
"당신 아직 거기 있는 거야? 왜 안 와."
"걱정하지 말아요." 집 앞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알고 있었다. 그놈의 위치 추적,
"걱정은 안 하는데 그냥, 당신 왜 그래."
헐~ 왜 그러냐고? 그걸 진짜 모르는 거야?
집 앞 차 안은 방 못지않게 편안했다.
새벽에 화장실 때문에 집으로 들어오며 다짐했다.
계속해서 기사 없이 살리라.
누가 더 힘든지 그건 겪어봐야 알겠지만 그날의 오기로 지금까지 운전을 자유롭게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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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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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희 작가의 수필 '당신이 함께 있든 없든'은 삶의 자립과 내면의 자유를 탐구하는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몇십 년을 함께한 친구 부부와의 만남을 둘러싼 소소한 갈등 속에서,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을 통해 관계와 자립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작품의 도입부는 오래된 친구 부부와의 만남이라는 익숙한 상황으로 시작된다. 코로나라는 시대적 배경과 감정의 설렘, 그리고 갑작스러운 갈등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정서를 환기시킨다.
이 과정에서 “With or without you”라는 문장은 작가가 삶의 본질적 자립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문장이 반복적으로 작품에 사용되면서 내면의 독백이 음악적 리듬을 이루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가는 자가운전을 선택하며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이 바보 바보 바보야!”라는 내면의 외침은 억눌린 감정의 폭발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관계의 미묘한 갈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격렬함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놓치고 있던 자신의 자율성과 내면의 자유를 되찾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작품의 미학적 가치는 작가의 감정적 표현과 극복의 과정에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느끼는 “숨통이 확 트인다”는 순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억압에서의 해방과 내면의 재발견을 상징한다.
이는 고속도로라는 물리적 공간을 정신적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변모시키며, 일상의 공간을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재해석하는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남편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남편이 개와 함께 차를 두드리는 장면은 두 인물 간의 갈등이 희화화되면서도, 서로를 향한 은근한 애정과 유머가 스며있다. “삐졌어?”라는 대화는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며, 인간관계 속에서의 타협과 유연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조적인 순간들은 작가의 삶의 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즉,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으로 갈등을 풀어내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차 안에서 느낀 편안함과 함께 “계속해서 기사 없이 살리라”라고 다짐하며 작품을 맺는다.
이는 단순히 자가운전을 할 것이라는 다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대목은 한연희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즉 자립과 내면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한연희 작가의 '당신이 함께 있든 없든'은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감각적인 언어와 유머러스한 전개 속에서 관계와 자립, 자유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독자에게 공감과 성찰을 제시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