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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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의 혼인
자인 이종식
눈 덮인 나리분지를 거닐며 가이드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지방마다 얽힌 혼인 이야기가 하나같이 우습고도 정겹다.
울릉도의 신랑은 색시를 맞이하기 위해 육지로 나간다. 일자리를 구하고, 마음이 맞는 여인을 만나 뜻을 이루면 다시 섬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육지에서부터 울렁이는 배를 타고, 긴 항해 끝에 울릉도 작은 선착장에 도착한다.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구불구불 산을 몇 개 넘고 나서야 비로소 시댁이라는 곳에 닿는다.
신부는 고운 한복을 입고 단장했건만, 긴 여정 끝에 머리와 얼굴은 엉망이 되고 고무신마저 너덜너덜하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떠나려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 대문조차 열 수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눈길에 갇혀 기다리다 보면 배는 불러오고, 아기를 하나 낳고도 "반드시 육지로 나가야지!" 다짐하며 벼르던 마음은 또 배 속의 아이에게 묶이고 만다.
그렇게 이어진 삶의 흔적이 지금의 70~80대 울릉도 할머니들의 모습이 되었다.
사위를 만드는 법도 참 특별했다. 울릉도를 놀러 온 젊은 남정네들 중 마음에 드는 이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혼기를 앞둔 딸을 둔 어머니들은 오징어회와 삶은 오징어, 씨껍데기술과 막걸리를 준비해 젊은 사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민박이나 하룻밤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술과 음식의 대접에 피로를 풀며 잠시 머물렀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술상이 평생을 함께할 책임의 시작이었다”고들 한다. 그 시절의 이야기가 때로는 부럽기도 하고, 그리움으로 가슴에 스며들기도 한다.
요즘은 위아래로, 좌우로 따지고 또 따진 끝에 혼인을 하며, 서로 맞지 않으면 쉽게 돌아서는 시대다. 문득 생각난다. 좋아하는 그녀를 보며 가슴이 터질 듯했던 젊은 시절, 한밤중 그녀를 보쌈해 지리산 계곡으로 도망쳤다는 황인용 씨 방송 속의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때는 그저 도둑놈 같아 웃음이 나왔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물살을 가르며 울릉도를 떠나 포항으로 향하는 크루즈 갑판 위에서, 나는 과거로 돌아가 혼자 웃는다.
춥다며 방으로 들어가자던 아내가 묻는다.
“왜 그렇게 웃어요?”
나는 대답한다.
“자네는 몰라도 된다네.”
혼자 슬며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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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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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의 울릉도에서의 혼인은 삶의 소박한 순간과 그 안에 담긴 깊은 철학적 성찰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작가는 울릉도라는 독특한 공간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과 결혼이라는 인류 공통의 주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단순한 행복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미의식은 시간과 공간에 깃든 인간사의 정취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데 있다. 울렁이는 바다를 건너 육지와 섬을 잇는 여정과 첩첩산중을 넘어 도달하는 작은 시골집의 풍경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시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는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삶의 세밀한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하면서도 단순히 향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현대인의 삶을 비추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잊힌 가치와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연민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특히, 울릉도의 혼인 풍습을 회상하며 당시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투박하지만 열렬히 사랑했던 과거의 모습이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임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철학은 삶의 단순한 요소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있다. 혼인의 어려움, 바다와 산을 넘어야 하는 힘겨운 여정, 소박한 민박집에서 시작되는 인연—이 모든 것은 단순한 고난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끈기와 삶의 아름다움을 담은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그려진다.
요컨대, 이종식의 작품은 인간관계와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겨진 진실한 가치를 되새기게 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잊힌 정서적 뿌리를 되살리는 데 기여한다. 그의 미의식은 단순함 속에서 깊이를 찾아내고,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