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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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빛
해가 머리 위를 넘어
서쪽으로 기울어질 즈음
허리빛이 들판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
고요가 얇게 깔린다
허리빛 아래에서
풀잎의 결은 더 선명해지고
바람은 그 선명함을
살짝 스쳐
조용한 선율을 만든다
돌부리 사이에도
금빛 먼지가 스며들어
하루의 흔적을
은근히 밝혀주고
나무 그림자는 길어진다
허리빛은
하루가 저물어 간다는
부드러운 신호처럼
모든 사물 위에 내려앉아
마음을 천천히 식힌다
허리빛은
저물녘의 마지막 숨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