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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마중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새참 마중



김왕식




한낮 볕이 논바닥을 허옇게 데우고
볏대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면
멀리 마을 어귀 쪽에서
색동 보자기 같은 새참 바구니 하나가 움직인다

이고 오는 어머니의 걸음은
흙먼지 위에 자박자박 박혀
오늘 하루의 땀 냄새를
한 발자국씩 어루만지며 다가온다

바구니 위 흰 보자기 틈새로
김이 가느다랗게 피어올라
논바람에 살짝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고
그 향기를 먼저 알아듣는 것은 배 속이 요동치는 아이들이다

곡괭이 자루가 흙 위에 눕고
허리 펴는 숨소리가 들판을 가로지르면
고샅길 따라 날아온 참새 떼도
잠시 논둑에 내려앉아 구경을 선다

보자기를 살포시 젖히는 순간
메밀묵의 말간 빛과
노릇노릇 감자부침개 냄새가
마치 오래 묵은 그리움처럼 가슴 안으로 스며든다

막걸리 주전자의 옅은 거품 사이로
햇살이 방울방울 비쳐 들고
거친 손등마다 건네지는 한 잔이
말 대신 오늘을 위로한다

누구도 수고했다는 말을 크게 하지 않고
그저 눈웃음 한 점씩 나눠 갖는 사이
논바람은 벼 이삭을 쓰다듬고
느티나무 그늘은 조금 더 길게 몸을 눕힌다

다시 삽을 잡으려 일어서는 등줄기마다
막걸리 한 모금의 따스한 숨결이 남아 있고
멀어져 가는 새참 바구니의 뒷모습 뒤로
저녁빛이 조용히 따라붙어 사람들을 감싼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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