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만 시인의 시 <낚시질>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낚시질




시인 허형만




오늘은 바람만 낚았다










허형만 시인의 시 <낚시질>

바람을 낚는 하루
— 존재의 무게를 비우는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형만 시인의 초단편시 <낚시질>은 단 한 줄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은 바람만 낚았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낚시의 행위, 하루라는 시간, 바람의 존재,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포개진다. 언뜻 유머처럼 보이지만, 이 한 줄의 언어는 삶의 본질을 품은, 혀형만 시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극소 미학이다.

일반적 시 구조에서는 이미지의 구성, 감정의 흐름, 운율의 고리 등을 통해 의미가 확장된다.
허나, 이 시는 압축을 택한다. 길게 펼쳐 설명할 수 있는 풍경과 감정을 단 한 줄로 봉인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해석을 여는 독자의 감각이다. 시인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이 비움이 시의 공간을 넓힌다.

낚시는 흔히 인내의 상징으로 읽힌다. 물고기를 기다리는 고요와 시간을 견디는 집중이 필요하다. 이 시는 그 기다림의 목적을 뒤집는다. 목표였던 고기가 아니라, 바람을 낚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실패의 고백이 아니다. 외려 의도적 비움에 가깝다. 고기를 낚지 못했을 때, 많은 사람은 실패를 말한다. 시인은 바람을 낚았다고 말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실체 없는 것을 실체로 바꾼다.

여기에는 시대의 가치 전환이 깃들어 있다. 성취를 삶의 목표로 삼는 현대 사회에서, 허형만 시인은 성취 대신 경험을 선택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획득이 아니라 관조, 성취의 무게 대신 존재의 가벼움을 긍정한다. 오늘 하루가 무엇을 남겼는가를 묻는 대신, 무엇을 느꼈는가를 묻는다. 이 시에는 그러한 삶의 태도가 침잠해 있다.
또한 시인은 저 중국의 강태공처럼 낚싯바늘을 펴놓고 고기를 잡을 의사가 없었던 낚시꾼처럼 보인다. 물고기를 얻으려는 욕망보다, 물 위에 드리워지는 바람의 결을 낚고 싶었던 마음. 결과보다 순간, 소유보다 자유를 선택한 정신이다.
이는 시인 허형만 시 세계 전반에서 발견되는 핵심적 가치의 한 축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감각, 존재를 억누르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여유, 그리고 비움 속에서 충만함을 발견하는 태도.

시의 주제는 결국 '비움의 철학'이다. 오늘이라는 하루에 실체적 성취가 없었다 한들, 바람을 낚았다는 고백은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이를 낚았다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끌어 올렸다는 뜻이다. 눈으로는 빈 낚시터지만, 마음속에는 바람의 빛깔과 냄새, 움직임이 남는다. 시인은 그것을 충분한 수확으로 여긴다.

허형만 시인의 미의식은 언제나 단순함의 깊이에 있다. 자연과 일상의 장면을 소박하게 붙잡아내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생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이 시에서 그는 고기 대신 바람을 낚으며, 현실 대신 감각을 선택하고, 결과 대신 시간을 포착한다. 이 단 한 줄의 시는 허무가 아니라 충만이다.

“오늘은 바람만 낚았다.”

그 말은 이렇게 들린다.
오늘은 조용히 살아냈다.
오늘은 바람을 들었다.
오늘은 마음이 움직였다.

허형만 시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 목표 없이도 충분한 하루, 실패 속에서 얻어지는 삶의 온도. 이 짧은 시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하루를 낚는가. 무엇을 얻어야 만족하는가. 무엇을 놓쳐야 보이는가.
허형만 시인의 시는 그렇게 버려진 낚싯대를 통해 삶을 이끌어 올린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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