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플라타너스




종로의 길 위
가로수의 상징처럼
버즘나무가 서 있다


봄에는 연둣빛 숨결로
도시의 얼굴을 씻어 내고
여름에는 혹서의 불길을 막아
그늘 한 장을 펼쳐 준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시간을 태우고
겨울이면
나목이 되어
세상의 말들을 내려놓는다


김현승은 너를
고독의 반려자라 불렀다


너는 늘 곁에 있으나
기대지 않고,
서 있으나
붙잡지 않는다


추울수록 벗는다
사람은 추위를 피해
겹겹이 입지만
너는 추위를 통과하며
겹겹이 내려놓는다


버즘처럼 벗겨진 껍질은
상처가 아니라
비움의 철학이다


너의 우듬지에는
까치가 보금자리를 틀어
작은 생의 둥지를 얹는다


너는 말없이
자기 몸 한 자리를 내준다


가장 헐벗은 계절에도
가장 높은 곳에서
누군가를 살리는 나무


끝내 남는 것은
푸름도 단풍도 아닌
벗어도 따뜻한
한 그루의 고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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