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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Feb 26. 2024

2024년 2월 24일 식도락 음식 일기

시어머니의 명절 음식

육지에서 태어나

육지를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는 나와

제주도 모슬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서해 섬마을에서 자라다가

초4학년에 대전으로 유학을 왔고

향수병에 걸려 다시 섬으로 돌아갔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쭉 육지에서 생활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잠깐이지만 대전에서 힘든 유학생활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시주받으러 다니시던 스님으로부터

'아들이 부모와 같이 살면 명이 짧아진다'라는 말을

듣고 고민 끝에

남편이 다니던 학교 선생님을 따라

대전으로 유학을 와서

선생님댁에서 하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하숙비로

한 달에 쌀 한 가마니씩을 보냈다고 한다.


11살 어린 소년은 방학 때만 기다렸고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온갖 심통을 부리며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결국

중2 때 섬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시가에 첫인사를 가던 날

밥상에 올라온

조개가 통째로 듬뿍 들어있는 조갯국,

직접 채취하여 만든 김구이로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았다.


 트인 바다를 좋아하고

섬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시가를 여행처럼 다녀왔다.


시가에 가면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는 작은 보트에 우리를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


가두리 양식장에 들러

강태공 시아버지께서 낚시로 낚아 올려

키우고 있는

우럭들에게 먹이를 주고

가두리 양식장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싱싱한 미역을 따 왔다.


무인도에는 우리 가족만 있었다.


제법 큰  바위 옆으로 끝없이 촘촘히 박혀 있는

조개들을 캐느라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썰물 때 미처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던 낙지,

보호색으로 바위틈에 딱 붙어있는

큰 소라들,

물이 빠진 바위 아래에서

박쥐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해삼들,

여기저기 있는 키조개들을 줍느라

우리는 물론이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부르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내가 무인도를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대합을 캐기 위해서였다.


그곳 주민들은

대합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 비싼 대합을 캐지 않았고

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우리 엄마는 미역국을 끓일 때면

비싼 대합을 소고기와 섞어서 넣어 끓였는데

시원한 맛과 깊은 맛이 일품이고

가끔은 대합을 총총 썰어 넣고 된장을 끓여주셨다.


대합이 숨어 있는

숨구멍은 조금 길었다.

호미로 잘못 건드렸다가는 쏘아대는 물에

물세례를 받고 도망가기도 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가득 캐고

또 캐고 싶었지

곧 들어올 밀물에 섬을 빠져나가야 하기에

서둘러 보트를 타고 돌아왔다.


잡아 온

조개, 키조개, 대합, 해삼, 키조개를

종류별로 담아놓고 물에 넣어두면

자갈치 시장이 연상될 정도였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보트를 팔았고,

이제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생겼기에

바닷가의 낭만은 누릴 수가 없지만

그 시절만 떠올리면 행복했고

시댁에 가는 날이

마치 소풍날을 받아놓은 초등학생처럼 즐거웠다.



설날,

시가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 있으니

그곳 사람들이 부르는 ''라는 조청한과와

향토음식인 '박대묵'이다.



지난 설에

딸, 아들을 데리고 인사를 다녀왔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직접 '과'를 만들지 못하셨는데

동네에서 특산품으로 만든 것을 가져왔다.


조청한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청을 고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찹쌀을 소주물에 이틀정도 담가 불린 후

은 가루를 쪄서

조그맣게 모양을 만들어

온돌방에 비닐을 깔고 바싹 말린 후

름에 튀기면 크게 부풀어 오른다.

튀긴  찹쌀떡은 바로 조청 속으로 들어간 후

쌀, 수수로 튀긴 튀밥으로

골고루 묻히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맛있는 조청한과로 탄생하는 것이다.


한과를 먹고 있는 남편이 세상 행복해 보인다.

<조청 한과>

6시 내 고향에서 두어 번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박대묵은 한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다.


박대묵은

'박대'라는 생선의 껍질로 만드는 묵이다.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기는 하다.


지느러미는 떼어내고

껍질을 깨끗하게 정리한 후

물에 불렸다가 비늘을 긁어낸 껍질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박박 문질러 씻은 후

물을 붓고 푹 끓인 후

용기에 부어 식히면

탱글탱글한 박대묵이 완성된다.


탄력이 장난이 아닌 박대묵은

서해안의 대표젓갈인 까나리액젓, 식초, 설탕, 다진 마늘,

파, 통깨, 참기름으로 양념한다.


입안에 넣으면 시원한 맛과

쫀득함에 빠져들 때쯤이면

입안의 온기로 인해

씹는 동안 사르르 녹아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이다.

                                                       <박대묵>

조청한과도,

박대묵도

많은 시간과 수고로움으로 완성되는 음식이지만

오직 자식들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주고자 하는 부모님의 정성과 자식 사랑이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찐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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