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은 없었다

by 그린버드

게임을 처음 켰을 때 튜토리얼이 나오면 솔직히 짜증난다. '이동: WASD', '공격: 마우스 좌클릭', '대화: E키'. 알겠다고. 나도 손가락 있다고. 그냥 하면 안 되냐고. 그런데 이상한 건, 현실에서는 그 짜증나는 튜토리얼 화면 한 번 본 적이 없다는 거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진 출처: Wired - LESLIE BERLIN - The Inside Story of Pong and the Early Days of Atari)

1972년, 캘리포니아 선니베일의 어느 술집 앞에 정체불명의 기계 한 대가 놓였다.

아타리(Atari)의 Pong이었다. 검은 화면에 흰 선 두 개, 흰 점 하나. 조작법 설명 없음. 규칙 설명 없음. 기계에 붙어 있는 문구는 딱 한 줄이었다. "공을 놓치지 마라.(AVOID MISSING BALL FOR HIGH SCORE)."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손님들이 코인을 넣었다. 레버를 움직였다. 30초 만에 이해했다. 1분 만에 소리를 질렀다.

이게 아케이드 게임의 근본 전제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죽으면서 배운다. 게임이 스스로 가르친다. 어찌 보면 굉장히 잔인한 설계인데, 그게 또 잘 작동했다. 왜냐하면 진짜 배움은 원래 그런 식으로 일어나니까.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일단 해보다가 틀리고, 틀리다가 어느 순간 되는 거니까.

문제는 그게 게임 얘기라는 거다.

Pong이 대박을 터뜨린 이유를 아타리 쪽에서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고 한다. 그냥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미쳤다. 서니베일에 위치한 앤디 캡스 테번 (Andy capp's tevern) 술집에 설치한 기계에 동전이 너무 많이 들어차서 기계가 고장날 지경이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놀런 부시넬이 기계를 점검하러 갔더니 동전 투입구가 꽉 막혀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처음엔 기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나는 이게 단순히 게임이 재밌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재밌긴 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Pong은 아마도 그 시절 사람들에게 굉장히 낯선 경험을 제공했을 거다. 화면 속 무언가가 내 손동작에 반응한다는 것. 내가 레버를 올리면 화면 안의 선이 올라간다는 것. 이게 1972년에는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거다.

생각해보면 그게 게임의 본질이다. 내가 입력하면 결과가 나온다.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내가 점프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점프한다. 내가 공격 버튼을 누르면 적이 맞는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시간이 0에 가깝다. 즉각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빠져드는 거다. 현실에서는 내가 뭔가를 해도 결과가 언제 올지 모르고, 내가 한 것과 결과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데, 게임은 그게 명확하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게임에서 튜토리얼은 없었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 세계에 입장하는 방법은 안 알려줬다. 들어오면 알아서 파악해라. 죽으면서 배워라.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했다.

나는 내가 몇 살 때부터 '진행 중'이었는지 모른다. 정확히는, 내가 어느 시점부터 이 게임의 플레이어가 됐는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기억은 대략 대여섯 살쯤부터 있다. 어머니가 어딘가로 걸어가는 뒷모습, 어린이집 운동장의 모래, 이유는 모르겠는데 울고 있는 나. 그 이전의 기억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한참 진행된 화면 앞에 앉아서, 내가 누른 적도 없는 시작 버튼의 결과를 감당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무도 조작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른들은 가끔 무언가를 말해줬다. "열심히 해라." "착하게 살아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그런데 이건 튜토리얼이 아니다. 이건 그냥 로딩 화면에 뜨는 팁 문구다. '적의 약점은 등 뒤다.' 알겠는데, 그래서 적이 어디 있는지는요? 언제 나타나는지는요? 내 캐릭터 체력이 지금 얼마나 남은지는요?

그런 건 아무도 안 알려줬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한동안 내가 유독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느낌. 주변 사람들은 이미 어디선가 설명을 들은 것처럼 척척 움직이는데, 나만 화면 앞에서 레버를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 이거 조작법이 이거였어요? 저는 다른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이 기분이 뭔지 아는 사람은 알 거다. 모두가 이미 같은 수업을 들은 것 같은데 나만 결석한 것 같은 기분. 모두가 같은 단톡방에 있는데 나만 초대받지 못한 것 같은 기분. 게임으로 치면, 모두가 이미 1회차를 클리어하고 2회차를 하고 있는데, 나만 1회차 초반에서 허둥대는 기분이랄까.

(동키콩 표지. 출처 나무위키&닌텐도)

Pong 이후로 아케이드 게임 산업은 빠르게 팽창했다. Space Invaders(1978), Pac-Man(1980), Donkey Kong(1981). 게임은 점점 복잡해졌지만 튜토리얼은 여전히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튜토리얼이 '게임 안에' 있었다. 별도의 설명 화면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플레이어를 가르치는 구조로 설계됐다.

Donkey Kong을 예로 들면, 1-1 스테이지의 첫 번째 장애물은 속도가 느린 배럴이다. 플레이어는 그걸 보고 '아, 저걸 피해야겠구나'를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1-2에선 컨베이어벨트1)가 등장한다. 1-3에선 엘레베이터까지 등장한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냥 점점 어려워진다. 플레이어는 점점 어려워지는 게임과 싸우면서 규칙을 체득한다.

이걸 게임 디자인 용어로 '임플리시트 튜토리얼(implicit tutorial)'2)이라고 한다. 말 안 해도 알게 되는 구조. 환경 자체가 가르치는 방식.

그러면 현실은? 현실의 임플리시트 튜토리얼은 뭔가.


아마도 실패다. 아마도 당혹감이다. 아마도 나는 왜 이것도 모르냐는 타인의 눈빛이다. 게임은 배럴을 피하는 법을 죽음으로 가르치는데, 현실은 대인관계를 실수로 가르치고 진로를 후회로 가르치고 감정을 상처로 가르친다. 구조는 같다. 다만 게임은 죽으면 다시 시작되고, 현실은 죽으면 그냥 죽는다는 게 다르다. (이 차이가 사실 전부이긴 하다.)

(사진출처: 닌텐도&위키백과)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는 튜토리얼 없는 게임 중 가장 완벽한 사례로 꼽힌다. 1-1 스테이지의 첫 5초를 보면 알 수 있다. 마리오는 화면 왼쪽에 서 있고, 오른쪽에는 열린 공간이 있다. 왼쪽엔 벽이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첫 번째 굼바(적 캐릭터)는 느리게 걸어온다. 충분히 피하거나 밟을 수 있는 속도다. 첫 번째 물음표 블록은 마리오 머리 위에 딱 맞는 높이로 있다. 점프하면 닿는다. 닿으면 버섯이 나온다. 버섯을 먹으면 커진다.

게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플레이어는 5분 안에 이 게임의 기본 문법을 전부 이해한다. 이게 천재적인 거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설계한 이 스테이지는 지금도 게임 디자인 교과서에 실린다. 설명 없이 가르치는 완벽한 구조라고.

그런데 이걸 읽으면서 이상한 생각을 했다. 마리오는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면 왼쪽이 벽이었으니까. 장애물도 처음엔 느렸다. 아이템도 처음엔 쉬운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까 마리오 1-1은 어렵지 않게 설계됐다. 처음 하는 사람도 클리어할 수 있게. 어렵지 않아서 좋았던 게 아니라, 어렵지 않아서 뭔가를 배울 수 있게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근데 내 삶의 1-1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쪽이 벽인지 몰랐다. 굼바의 속도가 처음부터 빠른지 느린지도 몰랐다. 물음표 블록이 있는지도 몰랐고, 있다 해도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사방이 열려 있었다. 사방이 열려 있는 게 자유처럼 보이지만, 방향을 모르면 그냥 미아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1-1에 가르칠 것을 전부 집어넣었다. 나의 1-1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면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있었거나.

이게 반복됐다.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서. 뭔가를 처음 해야 할 때마다, 나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 같은 것들을 몰랐다. 은행 창구에서 뭘 말해야 하는지. 병원에서 접수를 어떻게 하는지. 계약서에 서명할 때 어디에 하는지. 책 계약을 처음 할 때는 종이를 펼쳐놓고 서명했는데, 나는 그 종이가 뭔지도 모른 채 서명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줬어야 할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들도 아마 누군가로부터 안 배웠을 거다. 그냥 하다 보면 아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거겠지. 임플리시트 튜토리얼. 환경이 가르쳐준다. 실수가 가르쳐준다. 당혹감이 가르쳐준다.

근데 나는 배울 때마다 왜 이렇게 창피한 거냐고.

아마도 이게 현실과 게임의 결정적인 차이인 것 같다. 게임에서는 죽어도 창피하지 않다. 그냥 다시 시작된다. 죽었다는 사실이 화면에 표시되긴 하지만, 그게 다음 플레이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근데 현실에서는 실수가 기억으로 남는다. 내 기억에도 남고, 그 실수를 목격한 사람의 기억에도 남는다. 카드 단말기 구멍을 못 찾았던 그날, 아마 점원은 오 초도 안 돼서 잊어버렸겠지. 근데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점원의 손가락이 아래쪽을 가리키던 그 장면을.

게임이었다면 리트라이 했을 텐데.

(마계촌 표지. 출처 나무위키&닌텐도)

1987년, 캡콤(Capcom)의 마계촌(Ghosts'n Goblins)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악명 높은 난이도였다. 플레이어는 기사 아서를 조종해서 마왕을 물리쳐야 한다. 문제는 아서가 적에게 한 번 맞으면 갑옷이 벗겨지고, 두 번 맞으면 뼈만 남고 즉사한다는 거다. 온갖 고난 끝에 마왕을 처치해도 사실 그게 엔딩이 아니다. "이건 마왕의 환상이다, 진짜 마왕을 쓰러뜨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해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1스테이지로 돌아간다.

이 게임을 처음 한 플레이어들은 아마 멘붕했을 거다. 설명이 없었으니까. 두 번 맞으면 죽는다는 것도, 엔딩이 가짜라는 것도. 그냥 하다가 알게 된다. 죽으면서 알게 된다.

근데 사람들은 계속 했다. 이게 신기한 거다. 마계촌은 출시 당시에 엄청나게 팔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불친절하고, 심지어 엔딩도 가짜인데 왜? 그런데 당시 인터뷰를 보면 플레이어들이 하는 말이 비슷하다. "클리어하고 싶어서." "분해서." "이 게임한테 지기 싫어서."

아, 이거구나. 불친절한 게임이 오히려 더 강한 동기를 만들었던 거다. 모든 걸 알려줬으면 도전감이 없었을 거다. 모르니까, 어려우니까, 불합리하다고 느끼니까 더 하고 싶었던 거다. 이기고 싶어서.

이걸 삶에 적용하면 굉장히 위안이 되는 논리인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자기 합리화인 것 같기도 하다. 삶이 불친절하고 아무것도 안 알려주는 건 사실 우리의 동기를 강화하기 위한 설계라고? 글쎄. 그렇게 믿고 싶지만 확신은 못 하겠다.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그 모든 척척 움직이는 사람들도 사실 모른다는 거다. 그냥 아는 척을 더 잘하는 것뿐이다. 혹은, 자기가 모른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이게 게임으로 치면 엄청나게 웃긴 상황이다. 파티원이 다 같이 던전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던전 공략을 모른다. 근데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안 한다. 다들 아는 척을 하면서 일단 앞으로 걷는다. 그러다가 몬스터를 만나면 그때 가서 어떻게든 처리한다. 처리하면서 알게 된다. 임플리시트 튜토리얼. 현실판.

근데 이게 또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고 나니까, 내가 모르는 게 딱히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나만 결석한 게 아니었다. 수업 자체가 없었던 거다.

다시 1972년으로 돌아가자.

Pong이 설치된 술집 손님 중에 분명히 처음에 멍하니 서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거다. 코인을 넣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레버를 움직였는데 화면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를 못 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이미 능숙하게 치고 있는데 본인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근데 그 사람도 5분 뒤엔 레버를 움직이고 있었을 거다. 잘 못 해도, 이해가 안 돼도, 일단 하고 있었을 거다. 왜냐면 화면이 켜져 있으니까. 점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저 선을 잘 움직이면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게 게임이 가진 힘이다. 설명이 없어도 일단 하게 만드는 것.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삶도 그렇게 굴러가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조작법을 완전히 모른다. 어느 버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내 캐릭터의 스탯이 뭐가 높고 뭐가 낮은지, 이 스테이지의 클리어 조건이 뭔지, 전혀 모른다. 근데 어쩌겠나. 화면은 켜져 있고, 캐릭터는 이미 움직이고 있고, 나는 어떻게든 레버를 잡고 있는데.

튜토리얼이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덜 창피하다. 계약서를 읽지 않고 서명하는 것과 그 외의 것이. 그게 내가 유독 이상한 게 아니라, 이 게임이 원래 아무것도 안 알려주기 때문이라는 걸.

조금 덜 창피하다. 아주 조금.

1980년대 말, 게임 산업에 큰 변화가 생겼다. 게임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플레이어들이 진짜로 모르기 시작한 거다. Pong이나 Pac-Man은 5분이면 파악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RPG나 어드벤처 게임은 달랐다. 드래곤 퀘스트(1986), 파이널 판타지(1987), 젤다의 전설(1986). 이 게임들은 세계관이 있었고, 스토리가 있었고, 수십 시간에 걸친 플레이를 요구했다.

그러자 처음으로 '공략집'이라는 게 등장했다.

(게임매거진 1995년 12월호. 이 잡지 말고도 다양한 잡지가 존재했다)

게임 회사들이 공식 공략집을 냈고, 잡지사들이 공략 기사를 실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략 정보가 구전으로 전해졌다. 어디 가면 강한 아이템이 있다더라. 이 보스는 이렇게 잡는다더라. 숨겨진 던전이 여기 있다더라.

나는 어릴 때 공략집이 좋았다. 세대는 다르지만, 게임을 하다가 막히면 공략집을 폈다. 거기 다 나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 뭘 먹으면 강해지는지.

그런데 삶에는 공략집이 없다.

있는 척하는 건 많다. 자기계발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 유튜브의 '인생 바꾸는 습관 7가지' 같은 것들. 근데 그게 공략집이 아니라는 건 써보면 안다. 게임 공략집은 '이 방에서 왼쪽으로 가면 나온다'고 말해주는데, 자기계발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거다. 하나는 좌표고, 하나는 태도다. 좌표는 없는데 태도만 있으면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나는 내 삶의 공략집을 원한다. '19살, 진로가 불확실할 때: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25살, 관계가 끊어졌을 때: 이 아이템을 쓰면 됩니다.' '35살, 이 감정의 이름은: 이렇게 처리하면 됩니다.'

없다. 그런 공략집은 없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철학이랍시고, 종교랍시고, 문학이랍시고 만들어온 게 전부 그 공략집을 만들려는 시도였는데, 아직도 완성이 안 됐다. 앞으로도 안 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도 모른다. 그게 이 글의 결론이 안 될 거라는 건 안다. 이 챕터의 결론이 '그냥 해라'가 되면 너무 싱겁다는 것도 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겠다. Pong을 처음 본 그 술집 손님들이 멍하니 서 있다가도 결국 코인을 넣은 건,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점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저 선을 움직이면 뭔가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설명을 못 받았지만, 화면이 켜져 있었으니까. 조작법을 몰랐지만, 레버가 내 손에 있었으니까. 뭘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뭔가 하고 싶었으니까.

튜토리얼은 없었다.

근데 게임은 계속됐다.

어쩌면 그게 튜토리얼 없이 시작된 게임을 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코인을 넣는 것.







각주

1)패미컴 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스테이지.

2)명시적으로 안내하지 않고, 사용자가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능과 조작법을 익히도록 설계된 교육 방식을 뜻한다. 반댓말로는 익스플리시트 튜토리얼(Explicit Tutorial)이 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