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에는 금지어 미션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단어는 이 글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세계. 미래. 사랑. 기계. 영원. 천사. 바다. 숲. 여름. 겨울. 비. 눈. 유령. 죽음.
(고선경 시인의 시집인 『샤워젤과 소다수』에 수록된 시 중 하나인「스트릿 문학 파이터」에서 가져온 미션이다. 시인은 저 단어들이 시에서 너무 많이 쓰여서 이제 금지어로 지정해야 한다고 풍자하며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지금 저 단어들 없이 글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동시에 깨닫고 있다. 이미 머릿속에서 저 단어들이 문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아 잠깐, 기로는 괜찮나? 기로는 목록에 없다. 다행이다.)
게임 에세이를 쓴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시 얘기냐고.
왜냐하면 저 금지어 미션이, 내가 오늘 하려는 얘기랑 구조가 똑같기 때문이다.
선택지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선택지가 아닌 상황. 골랐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상황. 뭘 골라야 하는지 알 것 같은데, 막상 고르면 틀리는 상황. 저 금지어 목록을 받아든 시인처럼, 혹은 Zork의 커서 앞에 앉은 플레이어처럼.
(Zork의 플레이 화면. Steam의 zork anthology 소개 사진을 가져왔다)
Zork는 1977년에 나왔다.
MIT 컴퓨터 연구소의 대학원생 네 명이 만든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이다. 화면에 그림 따위는 없다. 글자만 있다. 게임이 상황을 묘사하면 플레이어가 명령어를 타이핑해서 반응한다. "당신은 열린 들판에 서 있다. 서쪽에 하얀 집이 보이고, 우편함이 있다." 플레이어: "open mailbox." 게임: "우편함 안에 광고 전단지가 들어 있다."
여기까지는 순조롭다.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이 게임에는 선택지가 없다. 객관식이 아니다.
① 우편함을 열어본다
② 집으로 들어간다
③ 서쪽으로 걷는다,
이런 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커서만 깜빡인다. 플레이어가 문장을 만들어서 넣어야 한다.
이론상 선택지는 무한하다.
실제로는 게임이 인식하는 단어가 따로 있고, 그 단어를 모르면 게임은 매번 같은 대사를 뱉는다.
그렇게 할 수 없다.(I don't know the word.)
1970~80년대 초, 이 게임을 하던 사람들의 증언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1) "2층 창문으로 들어가려고 'climb window', 'enter window', 'jump to window', 'break window', 'open window from outside'를 다 해봤는데 다 안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집 뒤로 돌아가면 됐다." "트롤을 잡으려고 'fight troll', 'hit troll', 'attack troll', 'kill troll', 'stab troll'을 다 써봤다. 다 됐다. 근데 맨손으로 하면 죽는다는 걸 몰라서 열 번을 죽었다."
틀린 선택지를 전부 소거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했던 거다.
그런데 Zork가 당시에 엄청나게 유행했다.
소프트웨어 회사 인포컴(Infocom)이 상업화한 버전은 1980년에 출시됐고, PC 보급 초창기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가 됐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림도 없고, 선택지도 없고, 틀리면 무뚝뚝하게 "그렇게 할 수 없다"만 돌아오는 게임이 왜 팔렸나.
인포컴의 공동 창업자 마크 블랭크가 나중에 다큐멘터리2)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이것들을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텍스트로만 구성된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상상력으로 나머지를 채웠다. 게임이 "어두운 통로"라고 쓰면, 플레이어 각자의 머릿속에서 각자의 어두운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통로를 탐험하는 건 전적으로 플레이어 몫이었다.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몰입했다.
내가 만든 문장이 게임에 영향을 줬을 때의 쾌감이, 미리 준비된 선택지를 고르는 것과는 달랐다.
'open mailbox'를 직접 타이핑하는 것과, ① 우편함을 연다를 클릭하는 것은 체험의 질이 다르다.
전자는 내가 행위의 주체이고, 후자는 내가 관람객에 가깝다.
근데 그 주체성은 대가를 요구했다. 수백 번의 "그렇게 할 수 없다"를.
*
나는 처음으로 진짜 선택을 해야 했을 때 Zork 같은 기분이었다.
선택지가 안 보였다. 아니, 보이긴 했는데 다 비슷하게 생겼다. 어느 쪽이 맞는 방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을 봤다. 옆 사람이 뭘 입력하는지 봤다. 그리고 비슷하게 입력했다. 논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면 적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았으니까.
그랬더니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소리가 안 들렸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방으로 가지지도 않았다.
Zork에서 "go north"를 입력했는데 북쪽으로 이동은 됐는데, 거기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상황. 문법은 맞는데 목적지가 틀린 상황. 이게 제일 오래 걸린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피드백이라도 있으면 바로 다른 걸 시도해보는데, 일단 이동은 됐으니까 여기서 맞게 하면 되는 건지, 처음부터 다른 방향으로 갔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안 선다.
이 상태로 꽤 오래 걸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인포컴)
Zork 시리즈가 낳은 장르, 텍스트 어드벤처는 1980년대 사이 번성했다.
인포컴은 Zork 외에도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1984), Bureaucracy(1987) 같은 게임을 냈다. Hitchhiker's는 더글러스 애덤스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게임인데, 이 게임이 악명 높은 이유는 초반부에 있는 퍼즐 때문이다. 주인공 아서 덴트가 소파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려 하는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아서를 일으켜야 한다. "get up", "stand", "rise", "move"를 다 해봐도 안 된다. 정답은 "lie down"이다. 누우면 일어난다. 이미 누워 있는데 누우라는 명령을 입력하면 아서가 '이미 누워 있다는 걸 인식'하고 일어선다.
이 퍼즐을 풀려면 게임의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게임이 작동하는 방식의 논리. 이걸 모르면 아무리 직관적인 명령어를 입력해도 안 된다. 현실에서는 맞는 선택이 게임에서는 틀리고, 게임에서는 이상한 선택이 정답인 구조.
이게 오히려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현실도 자기만의 논리로 돌아간다. 그 논리를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선택해도 계속 틀린다. 그 논리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그냥 틀리다 보면 언제부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언제부터 보이기 시작하냐고?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
1985년, 텍스트 어드벤처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픽이 발전했다. 화면에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글자보다 그림을 좋아했다. King's Quest(1984)가 그래픽 어드벤처 장르를 열었고, 이후 시에라 온라인과 루카스아츠가 이 시장을 장악했다. Monkey Island, Maniac Mansion, Myst. 선택지가 텍스트에서 아이콘으로 바뀌었고, 그다음엔 클릭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밌는 일이 생겼다.
선택지가 시각화되면서, 선택의 무게가 달라졌다. 텍스트 어드벤처에서는 내가 직접 단어를 입력했기 때문에 선택이 능동적이었다. 그래픽 어드벤처에서는 보이는 것들 중에 골랐기 때문에 선택이 수동적으로 바뀌었다. 더 쉬워졌지만, 동시에 더 좁아졌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표지 이미지. 사진 출처: 나무위키&퀀틱 드림)
2018년 퀀틱 드림이 만든 Detroit: Become Human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이라는 게임이 있다.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세 명의 안드로이드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특징은 선택지가 굉장히 많다는 거다. 대화 중에 선택지가 뜨고, 행동 중에도 선택지가 뜨고, 심지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다. 시간 안에 고르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 된다.
그리고 모든 선택이 결과에 영향을 준다.
이 게임을 처음 했을 때 나는 굉장히 신중하게 골랐다. 어떤 선택지가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계산하면서. 근데 문제가 있었다. 선택을 하는 순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열 개쯤 선택을 하고 나서야 다섯 번째 선택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미칠 영향을 당장은 알 수 없다.
게임이 챕터 종료 후에 통계를 보여준다. 이 선택지에서 전체 플레이어의 OO%가 A를 골랐고, OO%가 B를 골랐다는 식의. 나는 이 통계를 보면서 항상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소수파를 선택했을 때. 67%가 간 길을 나는 안 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게 틀린 건 아닌데, 왠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
이 기분을 현실에서도 느낀다.
남들 다 가는 방향을 나는 안 갔을 때. 통계적으로는 소수인 선택을 했을 때. 틀린 게 아닌데 왠지 틀린 것 같은 기분. 다수가 간 길이 옳은 길이라는 보장은 없는데, 숫자가 주는 압박이 있다. 다수결이 진리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혼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건 서늘하다.
Detroit: Become Human에는 나비효과 지도(Flowchart)라는 기능이 있다.
챕터를 클리어하면 내가 한 선택들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갔더니 저기서 이 문이 닫혔고, 저 문이 닫혔더니 나중에 이 캐릭터를 못 만나게 됐고, 그 캐릭터를 못 만났더니 엔딩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게 선으로 연결돼서 보인다.
처음 이걸 봤을 때 나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못 뗐다.
삶에 이런 지도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에. 내가 열다섯 살에 한 선택이 스물한 살의 어떤 문을 닫았는지. 스물다섯 살에 한 선택이 서른 살의 어떤 경로를 만들었는지. 그게 선으로 연결돼서 보이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내 삶의 현재 지점이 왜 여기인지.
근데 그 지도는 없다. 챕터 클리어 후에 정산해주는 시스템이 없다. 나는 그냥 지금 이 자리에 있고, 이 자리에 오게 된 경로는 복기가 안 된다. 일부는 기억하고, 일부는 흐릿하고, 일부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첫 번째 선택지가 어디였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123RF 무료 이미지)
선택지에 관한 연구가 하나 있다.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자 시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의 잼 실험이다. 슈퍼마켓에서 잼 시식 코너를 운영할 때, 24가지 잼을 놓은 경우와 6가지 잼을 놓은 경우를 비교했다. 24가지를 놓았을 때 더 많은 사람이 시식 코너에 왔다. 근데 실제 구매는 6가지를 놓았을 때가 10배 더 많았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다는 거다.
이걸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라고 부른다.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가 책으로 쓰기도 했다.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행복이 줄어든다는 내용. 왜냐하면 선택지가 많으면 내가 고른 것 외의 것들이 계속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저 잼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저 잼이 더 나았을 것 같은데. 24가지 중에 하나를 골랐으면 나머지 23개가 전부 미련으로 남는다.
Zork의 플레이어들은 이 역설에서 자유로웠다.
왜냐하면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메뉴판 없이 직접 "이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방식이었으니까. 실패하면 다른 걸 말했다. 그냥 그뿐이었다. 내가 고르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그게 뭔지도 몰랐으니까.
어쩌면 선택지가 안 보이는 게 오히려 나은 면도 있었던 거다.
물론 그 대신 수백 번의 "그렇게 할 수 없다"를 감당해야 했지만.
*
다시 금지어 미션으로 돌아오자.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저 단어들을 쓰지 않으려고 꽤 애를 썼다.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슬쩍 쓴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쓰다 보니 알게 됐다. 저 단어들이 금지됐을 때, 나는 오히려 더 정확한 단어를 찾게 됐다.
"사랑" 대신 "오래 신경이 쓰이는 상태"라고 써야 한다면, 그게 더 정확할 수 있다. "죽음" 대신 "리트라이가 없는 것"이라고 써야 한다면, 그게 더 와닿을 수 있다.
Zork에서 "open door"가 안 됐을 때, "unlock door with key"를 시도하게 되는 것처럼. 첫 번째 선택지가 막혔을 때 더 정확한 방향을 찾게 되는 것처럼.
첫 번째 선택지는 항상 틀린다고 했는데,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첫 번째 선택지가 틀리지 않으면, 두 번째 선택지를 생각해보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커서 앞에 앉아 있다. 게임은 내 입력을 기다리고 있다. 뭘 쳐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근데 적어도 이제는 안다. "그렇게 할 수 없다"가 나와도 그게 실패가 아니라는 걸. 그냥 이 단어는 아니라는 뜻이라는 걸.
다른 단어를 찾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알겠다. 그럼 다른 걸로.
각주
1)지금은 삭제•사이트 노후화로 인한 폐쇄 등으로 그 시절의 것들은 들어갈 수 없으나, 현존 사이트인 레딧(Reddit) 등 해외의 것에 들어가면 그 시절의 추억을 찾을 수 있다.
2)<get lamp>(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