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4 - 2023.11.05 DAY3 & 4
여행 일지를 날짜별로 분류해서 총 4부작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마지막 날에는 료칸숙소에서 간단한 조식 뷔페를 먹고 공항으로 이동해서 다시 한국에 들어온 것 밖에 없어, 3일 차와 4일 차를 한꺼번에 묶어 작성해보려고 한다. 3일 차 아침에는 오후 3시까지 삿포로 시내를 즐길 시간이 있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면서 미리 싸둔 짐을 맡기고, 삿포로 시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아침 일찍 눈을 뜨는 두 부지런쟁이들에게 일본의 토요일 아침은 다소 차분하고 조용했다. 상점들이 10시나 11시에 열어서, 그전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스타벅스는 가장 무난한 브랜드이면서도, 각 나라에 맞게 다양한 메뉴들이 준비가 되어있다. 특히 베이커리류가 더 그래서, 예전에 스페인이나 하와이에 여행을 갔을 때에도 스타벅스 베이커리를 구경하며 한국의 스타벅스와 비교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었다. 이번에도 모닝커피 겸 간단한 아침을 먹기 위해 스타벅스를 찾았고, 토요일 아침부터 데이트 중인 젊은 커플들, 조용히 본인의 일에 집중하는 카공족들을 볼 수 있었다.
삿포로를 떠나기 전, 유제품이 유명하다는 삿포로에서 먹어봐야 한다는 유명한 라떼 맛집에도 들렸다. 나는 평소에 유당불내증으로 인해서 라떼를 잘 마시지 않지만, 유명하다니 또 먹어 봐야지, 하며 딱 한 입만 삼켰다. 뭔가 우유보다는 연유의 느낌이 더욱 강했다. 유명한 라떼 집 바로 앞 맞은편에는 텐동집도 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일본여행에서 괴로움을 느꼈다. 분명 블로그를 보면서 어떤 메뉴가 있는지 공부해 갔는데, 그래서 미리 무슨 메뉴를 시킬지도 다 알아 뒀는데, 왠 걸 생각지도 못한 음식이 내 앞에 놓였다. 나중에 찬찬히 읽어보니 ‘with green tea’라는 게 찻물에 밥을 말아먹는 메뉴였다.
그러나 블로그에서도 같은 메뉴를 시켰는데 그냥 텐동이 나왔단 말이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요리를 앞에 두고 숟가락도 쉽게 잡지 못한 채 미간만 찌푸렸다. 다시 텐동을 시키기에 이미 나온 메뉴가 아깝고, 그렇다고 찻물에 밥이 말아져 있는 텐동은 먹기 싫고. 1분이 흐르지도 않았을 시점이었지만, 상대방도 내가 쉽사리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게 불편했나 보다. 메뉴를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다시 주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찻물에 밥이 말아져 있는 텐동은 같이 간 짝꿍이 다 먹어주었다.
오후 3시 삿포로 역, 약속된 시간에는 조잔케이 온천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우리는 다음 1박 2일을 료칸숙소에서 지낼 예정이었다. 다다미가 깔린 널찍한 방과 프라이빗한 온수풀, 야외노천탕을 즐기고 뜨끈해진 몸으로 숙소에서 차려주는 가이세키를 먹으며 실컷 사육을 당할 생각에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숙소 1층에는 매점과 카페가 있었고, 카페에서는 무료로 술과 커피, 간단한 안주거리가 밤 11시까지 제공되었다. 방으로 올라가니 각자 유카타와 나막신이 제공됐는데, 처음에는 유카타 입는 방법을 몰라서 쩔쩔맸다. 인터넷으로 한참을 검색해 보고 나서야 품을 맞출 수 있었다.
5시에 미리 예약한 프라이빗 풀에 방문했는데, 하루에 단 4팀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한 팀 당 1시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관리에만 사용하나 보다. 탕은 다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도 물이 어느 정도 수위 아래로 빠지면 자동으로 채워지는 시스템이었다. 목욕을 마친 후에는 식당으로 가서 가이세키를 먹었다. 상다리가 휘어질 거 같은 상차림에 놀랐고, 음식이 생각보다 입에 맞아서 놀랐다. 저녁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갈리던데, 완전한 호였다. 밥까지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니, 방 한가운데에 있던 상은 치워져 있고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각자 식사시간에 맞춰 이부자리를 준비해 주는 세심함에 감동했다.
료칸 온천 여행 내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생각보다 한국인이나 외국인 관광객은 적었고, 일본인이 많았다. 그리고 특히,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대가 있는 사람들 위주였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보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한국인 부자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것이었는데, 아들이 내 나이 또래인 20대 중후반 ~ 30대 초반으로 추정되었다. 그 둘은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가 눈빛으로 드러났다.
다음날 새벽, 조식을 먹기 전에 한번 더 대중탕을 쓰고, 야외노천탕에서 사색을 즐길 수 있었다. 내 앞에는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놓은 산과 열매를 찾아다니는 까마귀만 있었다. 한가로이 그 고요를 느꼈다. 다시 차 경적소리와 키보드 소리,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도시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인사치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