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커리어적인 면에서 더욱 그랬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브랜드를 엄청 따졌고, 남들 다 간다는 좋은 대학, 남들 다 간다는 대기업에 욕심이 있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다 가지고 마는 성미였다. 또 그녀는 명예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상에서도 ‘돈보다는 명예’를 외치고 다녔으며, 돈만 주면 뭐든 다 한다는 부류의 사람들을 혐오했다.
사실 그녀의 첫 직장은 커리어를 쌓기 딱히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또, 그녀의 스펙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그런 회사였다. 친구들은 모두 잘 나가는 대기업, 외국계 회사에 턱턱 붙었지만, 그녀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일찌감치 욕심을 버리고, 대기업의 한 계열사로 들어갔다.
사실 그녀는 조금 더 백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그녀에게 뭐가 그리 급하냐며, 다른 좋은 회사들도 있지 않냐며, 조금 더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하루빨리 취직을 해 안정감을 찾고 싶었고, 취업에 대한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일단은 업계에 들어가면 나중에 이직을 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첫 회사에 입성했다.
첫 회사에서는 그럭저럭 1년을 보냈다. 1년을 보내고 나니 달라진 것이 많았다. 주변이 달라지기보다는 그녀의 시야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녀는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이곳에서의 커리어적인 발전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곳에서 더 고이기 전에, 물경력이 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 결심은 바로 시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러한 생각에 트리거를 건 것은, 그녀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의 이직 소식이었다. 그녀와 그 직장동료는 바로 옆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사는 동네도 같았고, 나이대도 비슷했다. 학력도 같은 약사로 공통점이 많았다. 그간 주고받은 정 때문인지, 그 동료 없이 더 버티기 힘들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녀도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이력서를 쓰고, 헤드헌터들을 만나고, 여러 번의 면접을 봤다. 그녀는 사실상 최고의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서류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두세 곳에서 면접을 보고, 한 회사에 최종합격을 했다.
새로운 회사는 서울에 있었기에, 그녀는 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직과 이사를 동시에, 그것도 2-3주 만에 다 해내느라 꽤 애를 먹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집을 얻어 중도 계약금을 다 못 받고 나오기도 해야 했고, 이전 집도 계약기간 만료 전에 나와 몇 달간 돈이 술술 새어 나갔다.
이전에는 본가에서 자취방을 구한 것이어서 짐도 적었고, 집을 구할 시간도 넉넉했고, 부모님도 계셨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사를 하며 발생하는 소소한 이벤트들, 가스 검침이나 폐가구 분리, 잔금처리 같은 일들을 그녀는 혼자서 해야 했다.
그녀는 그때가 그녀 인생에서 최고 과도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정말 무엇 하나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그녀의 이전 직장에서는 그녀의 업무를 인계받을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마지막까지 그녀를 쉬게 두지 않았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오후까지, 그녀는 휴가를 쓸 수 없었다. 금요일 오후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는 약국을 나가고, 일요일에 이사를 해서, 다시 월요일에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하는 극악무도한 스케줄을 그녀는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