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프란츠 카프카
변신은 유명한 책이다. 필독서는 읽고 보자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대학교 입학 후 새내기 시절 이미 이 책을 한 번 읽었다. 어린 마음 들었던 생각은 만일 내가 이 책의 화자처럼 굉장히 큰 벌레가 된다면, 그리고 점차 말도 할 수 없어지고 사람처럼 살 수 없어진다면 그전에 그냥 죽고 싶을 거란 생각이었다. 만약 당신이 벌레가 되고, 벌레가 된 당신을 가족들은 알아보지만 당신의 얘기를 알아들을 수 없고 당신을 짐처럼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 대답은 당신이 신체적, 지적 장애인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의 답변과 유사할 것이다.
우리네 세상은 참 바쁘게도 흘러간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비교를 당하는데, 본격적인 시작은 유치원부터 시작한다. 유치원도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공립을 가야 한다, 영어 유치원을 가야 한다 참 말도 많은데 우습게도 한 계단 겨우 넘어 올려다본 위쪽 세상은 더 거칠고 가파른 계단으로 가득 차있다. 누군가는 거대한 부모의 도움을 받아 몇 계단을 우습게 올라가고, 누군가는 마르고 작은 몸으로 큰 계단을 올라가려 안간힘을 쓴다. 이렇듯 쉴 새 없이 경쟁하고 분주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마치 투명 망토를 쓴 듯 출근길에서도, 퇴근길에서도, 즐거운 주말의 북적거리는 유원지에서도 찾아보기 참 어렵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의 수가 적어서일까?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5,000만 명 중 265만 명이면 대략 18.8%의 비율을 차지하는데 20%에 달하는 비율이 과연 적어서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20% 비율의 사람들에게 우리에게도 버거운 계단들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물론 배려하기 참 쉽지 않은 세상이긴 하다. 5분, 10분 차이도 중요한 출근길에 느리게 대중교통에 오르는 장애인을 기다려주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그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어주고 천천히 내리는 그들을 기다리는 건 지각해 온갖 눈총을 받을 우리에겐 참 어렵다.
사실 이런 개인적 차원에서의 변화와 포용적 마음가짐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조적 변화란 뜻이다. 출퇴근길에 장애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 지하철역마다 역무원을 배치하거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율 출퇴근제를 운영하면 된다. 또한 부족한 특수학교를 추가적으로 세우고 교육을 세부적으로 나눠 발달 단계에 맞는 수업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이들과 더 자연스럽게 섞여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이다. 장애인은 본인에게 맞는 교육을 듣고 가능한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보호하고 이롭게 하기 위한 많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국가는 초반 비용을 많이 쓸 수 있지만 결국엔 근로 가능 인구를 늘리고 복지 국가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조그만 국가에 뭐 이런 어려움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대상들은 많고 해결하는 방법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이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쌓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큰 발전을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