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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Apr 16. 2024

나는 왜 너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나

돌아보니 미련에 꽤 집착한 편이었다. 오래전 꾸었던 꿈을 오래도록 접지 않는다거나 결정한 것을 웬만해서 포기하지 않는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접으면 그만인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놓지 못했다. 그래서 이룬 것도 많지만, 그래서 잃은 것도 많다.


미련에 집착하면 현실을 왜곡한다. 그 길은 나의 숙명이며, 다른 길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실패해도 좌절해도 끝까지 그 목표를 바꾸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해야 모든 것이 안정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 목표를 달성했지만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기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중간에 포기했으면 풀리지 않은 숙제에 평생을 갈아 넣었을 것이다.


세상에 올바른 결정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결정도 없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해도 세상은 계속 전진하기 나름이다. 목표를 꼭 완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가다 보면 더 좋은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신은 누구에게나 몇 개의 문을 선사했다고 생각한다.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각자의 상황에 맞는 일정량의 문을 나눠줬다고 믿는다. 어떤 문을 열면 고난이 밀려오기도 하겠지만, 어떤 문을 열면 뜻밖에 행운에 쉽게 도취될 수 있을 것이다.


왜 나에게 시련의 문만을 줬느냐고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문은 닫아버리고 잊어버리면 된다. 하나를 버리면 하나의 새로운 문을 받을 수 있다. 그 뒤에 무엇이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문에 집착하지 않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문을 미련 없이 닫아야 한다.


문을 닫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뇌가 필요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무엇을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까.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시간을 무한정 잡아먹는 일에서 한 번쯤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한 번은 끊어내야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아쉬움 때문에 미적거릴수록 내게 주어진 시간만 줄어들 뿐이다. 차라리 고뇌의 문을 빨리 닫고 새로운 문을 열어 운명을 시험해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으리라.


미련에 집착한 이유를 살펴보니, 내가 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물론 대부분 공부하고 도전하고 고쳐가면서 어느 정도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 되는 문제를 왜곡하기도 했다. 특히, 나는 인간을 고쳐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여전히 심리학 책을 많이 보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방법을 알고, 원인을 알아도 고치기 쉽지 않다. 인간으로 성장하기에 꽤나 오랜 시간이 투여되기도 하고 인간을 형성하는 요소가 너무도 복잡하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이가 드니 미련을 접는 것도 점차 쉬워진다. 그리고 내 운명을 내가 바꿔간다는 말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점차 개선되어 가지만 그들을 완전히 구해내지는 못했다. 아마 그러지 못할 테니. 그럼에도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미련은 아직 가슴에 남는다. 그들이 자신의 숙제를 올바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선에서 나의 미련을 점차 접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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