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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Mar 23. 2024

테그닉이 없는 작품에 더 감동하는 이유

한 동안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깊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책도 많이 보고 드로잉 수업도 받았다. 그리고 1년은 유럽의 과거 대가들의 드로잉을 매일 조금씩 연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내 작업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내게는 내 세계관이 아직 부족한 것이다.


몇 년 전에 학생들을 더 깊이 상담해 주겠다는 이유로 미술 심리 상담을 공부한 적이 있다. 6개월만 해보자고 덤볐는데 그게 1년 6개월이 되었다. 재밌었다. 뭘 배운다기보다는 나를 더 알아가는 과정에서 묘한 쾌감이 있었다.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또 작가의 세계관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여전히 미술/아트를 매개로 한 상담을 하고 있다. 돈을 받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내게는 감동이고 감사할 일이다. 나와 상담하는 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들이 가진 생각, 가치관은 무엇인지 그들이 무엇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체크한다. 어떤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잘 발견하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일 뿐이다.


그들의 그림에는 테크닉은 거의 없다. 조잡하고 또 조악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대가의 작품보다 넘치는 감동이 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들의 작업에는 '세계관'이 있다. 자신만의 생각, 스토리가 중심이다. 테크닉은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그림은 적어도 나와 그들에게는 큰 감동과 기쁨을 준다.


물론, 내가 그들의 스토리 배경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세계관이 담긴 작업은 기술적으로 잘하려고 노력한 것보다 훨씬 보기 좋다. 스토리를 들으면 절대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작가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도슨트의 이야기를 들으면 작품 감상이 더 감동적이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시 내 작업의 이야기를 빗대어 보면 내 작업은 아직 공허할 수밖에 없다. 시작의 목적이 여전히 불순할 뿐이다.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과 내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을 금방 안다. 그것이 작가의 진심인지 혹은 겉치레인지.


내 작업도 미술 심리를 하듯 진심을 담아야 한다. 내가 세상에 대한 내담자가 되어 내 세계관을 조금씩 풀어낼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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