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기의 행복은 들뜬 기쁨보다 스트레스가 없는 평온한 마음이 아닐까?
얼마 전에 벤츠를 샀다. 벤츠를 사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았다.
새 차의 냄새, 매끄러운 핸들, 엔진 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파트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드르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이거 범퍼 긁힌 거 아냐? 100만 원은 나갈 텐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휘젓고 지나가며 속이 울렁거렸다. 다행히 차에서 내려보니 앞바퀴가 벽돌 한 조각에 부딪힌 것뿐이었다.
새로운 차를 사고 나서 행복한 마음은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그 후로는 그냥 차를 산 것일 뿐, 특별한 행복감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수입차 부품값 걱정, 복잡한 수리 절차 때문에 골치만 아팠다.
중년이 되고 나서 깨달은 건, 행복이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을 멀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어떤 날은 점심시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사고 김밥집에서 김밥을 하나 골라 양재천 다리 아래 조용한 벤치에 앉는다. 혼자 먹는 김밥이지만 천천히 씹어 먹으니 단무지의 아삭한 소리까지 들린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는 가운데 따뜻한 커피를 불어 마시면, 이거면 충분하다 싶다. 행복이란 아마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
요즘 나는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피해간다. 만나기 싫은 사람과는 억지로 만나지 않고, 시끄럽고 번잡한 술자리는 아예 안간다.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책 한 권을 천천히 넘기거나, 깊이 있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마음의 여백을 채운다.
굳이 가슴이 뛰는 일이 없어도 괜찮다. 특별히 부족한 것도 없다. 그저 마음이 고요하면 된다.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생기면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정리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행복의 기준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10대 때는 공부 성적이 제일 중요했고, 20대는 어느 대학에 진학했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30대가 되면 어떤 기업에 들어가느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었고, 30대 이후가 되면 그 직장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맡아 승진하느냐가 행복의 기준이 된다. 그러면 중년기에는 무엇이 행복의 기준이 될까?
사진 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으러 고속버스터미널을 자주 가는데, 그곳에 생과일 착즙 주스 가게가 있다. 가끔 다소 비싸긴 하지만 오렌지 착즙 주스를 사서 마신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착각에 빠져서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어쩌면 상황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내 책임과 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면 크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또 마음에 들뜨는 일이 생기면 그 일이 가능하게 한 다른 사람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겸손하면 그것이 화가 되지 않는다. 행복은 어쩌면 세상이 바라보는 기준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행복감을 느낀다.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승진을 하거나, 다 상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적인 것을 언제까지 가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내가 상대적으로 타인에 비해서 우월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중년기에 들어서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다. 그 시기에 타인과 비교해서 사는 것은 어렵다. 내 마음의 기준, 내 생각의 기준을 바꾸어서 내 스스로 자족하는 것,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