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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순금 Aug 25. 2023

기대 1도 없는 우즈벡 여행 - 부하라편(2)

타슈켄트 생존기

우즈베키스탄의 대표 관광지는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가 3대장, 옵션으로 혹시 장기 체류할 경우 한 번쯤 다녀올 만한 코칸트와 누쿠스가 있다.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 중에선 부하라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편인 것 같다. 사마르칸트보다 예쁘고, 그러면서 너무 깡시골은 아니고. 그래서 우즈벡 여행을 계획하면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짝꿍은 제일 처음 다녀오는 필수 코스다. 그런데 남들은 제일 먼저 가본다는 부하라를, 나는 어쩌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이제서야, 그것도 제일 마지막에 가게 되었냐 하면 ‘이게 다 우즈벡 교육부 때문’이다.

 

처음에 우즈벡 왔을 때 우즈벡 교육부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우즈벡 구경 다 시켜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다섯 번 넘게 들은 것 같다. 오히려 나는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꾸 들으니까 은근히 기대하게 될 정도로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그랬다.

사마르칸트 출신 사람은 사마르칸트 여행시켜 주겠다, 부하라 출신 사람은 부하라 구경시켜 주겠다, 안디잔 출신 사람은 안디잔 데리고 가 주겠다… 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그 숱한 사람들 중에서 진짜 어디라도 같이 데려가 주려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우즈벡 교육부는 타슈켄트 빨간 버스조차 태워주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밥 한 번 먹자." 같은 개념이었을까?

 

그러다 봄 즈음이 다 되어서야 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마르칸트는 내돈내산으로 얼른 해치워 버렸다. 그런데 부하라 만큼은 자꾸만 희망 고문을 당했다. 정말로 최근까지도 ‘부하라에서 연수가 있을테니 준비해 달라’, ‘부하라 연수 자료 만들어 달라’, ‘부하라 연수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 부하라, 부하라, 부하라 하는 통에 진짜 가는 줄 알고 미루고 미뤄놨던 것이다. 놀라울 것도 없이 멍청이는 나였고, 부하라 연수는 흔적도 없이 취소되었다.

 

우즈벡 교육부가 그 법석을 떠는 동안 여행하기 좋았던 마지막 계절, 마지막 하루까지도 전부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물론 ‘이 사람들 말 믿으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빨리빨리 움직여서 다 보고 올 수도 있었지만 ‘Hoxy 그래도 양심상 부하라 한 군데 정도는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기보다도 버리기 '귀찮았던' 것일 테다.

 

그리하여 1년을 우즈벡에서 구르는 동안 제일 인기있는 관광지를 제일 마지막까지 못 가고 남겨둔 사연은 이러했고, 그리하여 이 뜨거운 여름 한복판, 정수리가 타들어갈 것 같은 7월 중순에 부하라를 혼자 꾸역꾸역 오게 되었다.

 


사마르칸트, 히바, 코칸트까지 다 구경했던 터라 부하라 관광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사진으로 보나 실제로 보나 큰 차이 없는 파아란 타일의 사원들과, 무덤과, 황토색 성벽 뿐이겠지. 그리고 내 손으로 찍는 아이폰 사진보다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여행작가들의 DSLR 사진들이 훨씬 멋지겠지.

영어나 한국어를 잘하는 가이드를 개인적으로 고용하려면 비싸니 그룹 투어를 해야 하는데 낯선 사람들하고 부대끼고 싶지도 않고, 가격이 저렴한 개인 가이드를 고용하면 의사소통 스트레스는 물론 관광지에서의 스토리텔링도 재미가 없다. ‘배경지식이 부족하지만 따로 공부할 의지가 없는 여행자 + 외국어 실력이 부족한 가이드’는 그야말로 환장의 조합이다. 결국 아무렇게든 혼자 다니는 게 속 편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맛투어를 좀 해볼까 해도 우즈벡 음식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서 문제다. 우즈벡의 자랑, 넘버원 국민음식 오쉬(=기름밥)은 나름대로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입에는 그저 대동소이한 버전의 느끼함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음식을 모르는 외국인이 김치를 처음 보면 배추김치든 열무김치든 갓김치든 다 냄새나는 썩은 채소 같겠지만.

 

나도 처음에 왔을 땐 우즈벡 사람들이 오쉬를 사주면 꽤 잘 먹어서 ‘어, 나 기름밥 좋아하네?’ 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사랑한다면, 좋아한다면 돈을 쓰는 게 이치어늘, 1년을 지내면서 기름밥을 내 돈 주고 사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 좋아하는 게 아닌 것이다. (라그만과 삼사 정도는 다른 데 여행 갔을 때 먹을 게 없어서 내 돈 주고 사먹은 적 있긴 하다. 다른 옵션이 없어서….)

기름기름, 니글니글한 맛 쁠러스, 고무 대야에 덩그러니 쌓여 파리가 앉았다 말았다 하는 고기 덩어리, 안 씻은 쌀, 거대한 솥 앞에서 땀을 쓱쓱 훔치는 요리사들을 하도 많이 봤더니 이제는 우즈벡 음식이라면 치를 떨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투어도 아웃, 맛투어도 아웃. 이런저런 이유로 부하라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0에 수렴했고 어떤 항으로도 회복 불능이었다.

 

따라서 계획은 이랬다. 2박 3일 일정 중에 관광에는 딱 한 나절만 할애하자! 오전 8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조식을 먹은 뒤 9시 반에는 나가서 관광, 점심 먹고 돌아와서 나머지 시간은 호텔에서 호캉스. 어차피 바깥을 돌아다니기엔 날도 너무 덥고, 호텔도 좋은 데로 잡았으니 조식과 호텔 시설을 최대한 즐기다가 천천히 나가고, 일찌감치 호텔로 복귀하면 그게 바로 뽕 뽑는 여행이다. 점심엔 지인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해준 Ayvon 레스토랑 가서 연어 스테이크 먹어야지. 내겐 너무 완벽한 플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새끼가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거의 요행에 가까웠던 무지성 계획은 자연스럽게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알람 십수 개는 보기 좋게 무시하고 느지막히 오전 10시에 일어나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바삭바삭 조오흔 침대를 두고 이불 밖으로 나선다는 건 몹시 옳지 않은 일이다. 계획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은 커녕 ‘이래도 채 8시간을 못 잤네’ 하며 뻔뻔한 생각을 하는 주인을 보며 뜨악할 내 안의 또다른 자아들을 가볍게 외면해 버리고, 우선 조식 뷔페 끝나기 전에 허겁지겁 밥부터 먹으러 갔다. 침대를 벗어나는 건 죄악이지만 돈을 버리는 건 더 큰 죄악이니까, 나를 움직이는 건 역시 자본주의 뿐이다.

 

과일과 와플로 두둑하게 배를 채웠다. 조식 코너에서 좋았던 건 우즈벡 참외랑 수박 잔뜩 먹을 수 있었던 점. ‘디냐’는 우즈벡 참외인지 멜론인지 애매한데, 참외와 멜론의 중간 맛 정도이고 수분량도 높고 달다. 우즈벡은 수박도 맛있다. 둘 다 가격도 엄청 저렴해서 마음만 먹으면 무한히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1인 가구는 언제나 대형 과일 소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쥬시의 수박 도시락을 여기다 오픈해서 디냐랑 수박을 썰어 팔면 나는 정말 매일 사먹을 수 있는데 사업할까.

 

우즈벡 멜론 디냐 https://specialtyproduce.com/produce/UzbekRussian_Melon_579.php


커피까지 알차게 두 잔 마시고 나니 열두 시가 거의 다 되었다. 어차피 늦었으니 뭘 할까. 다음 목적지는 실내, 실내입니다. 게으른 주제에 운동복이랑 러닝화는 빼먹지 않고 챙겨온 나. 레깅스에 러닝화까지 풀착장하고 호텔 피트니스를 찾아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호텔 헬스장에서 혼자 삼십 분을 뻘뻘 뛰고 내려와 스쿼트 100개도 했다. 땀이 줄줄 나고 허벅지 터질 것 같았지만 뿌듯함에 중독되는 이 기분. 열심히 사는 나, 제법 멋져. (늦게 일어난 건 까맣게 잊음)

Mercure Hotel Old Town Bukhara 지하 헬스장. 넓지는 않지만 다 새거!

헬스장 관리하는 직원한테 “Room 208. Thanks, have a good day, you too.” 하고 자랑스럽게 헬스장을 나오면서 오늘은 허리 고무줄을 느슨하게 하고 무엇이든 집어먹어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겨우 이걸로는 아침밥 칼로리 소비도 못 되겠지만 원래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 법.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태도가 타의 모범이 되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 엿보임. 그럼 이제 슬슬 발전 가능성 실현하러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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