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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Mar 29. 2024

교포 교사가 버려야 할 것

하나.  성과 상여금

  우연인지 몰라도 오늘 2023년의 성과를 정리하는 성과 상여금이 들어왔습니다.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면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작년 한 해 살아온 노력이 S, A, B로 나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돈은 저 3단계 중 하나에 속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 반 아이들을 가르치고 내가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해 냈지만 모든 사람이 S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성과를 단계로 나누어 주는 금액이니까요. 교직사회에서 업무란 이 3단계로 나누어 평가할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가 S이고 어디까지가 B인지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수업활동으로 정확하게 분류가 될까요? 모두 다 최선을 다한 1년을 무엇을 근거로 등급을 나누는가 거기서부터 성과급은 언제나 뒷 말이 많습니다. 


 기계적인 생산직은 생산량을 평가하고 판매직은 자신의 실적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지만 교직사회에서 이 평가는 점수화하고 숫자 화하여 나타내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성과급을 동일하게 나눠주거나 그래도 조금 더 고생하신 분들을 위해 2단계로 나누자거나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올해도 성과급은 어떠한 결론 없이 통장에 입금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민주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는 우리끼리라도 평준화하자고 하지만 그것 역시 불법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 나서서 행동하지는 못 합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늘 입금된 성과급을 보니 교포 교사가 포기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성과급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학교사회는 일반 교사와 부장교사가 있습니다. 부장교사는 정확한 직급은 아니지만 학교의 일을 도맡아 하는 교무, 연구 등 많은 일을 맡아하시는 분들이 부장교사를 하게 됩니다. 이 역시 승진에 관련된 점수가 있기에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맡은 업무에 비해 개인의 노고가 너무 크기에 요즘에는 부장을 기피하는 학교도 생깁니다. 부장이라 해서 큰 대우를 받거나 이익이 있기보다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크게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렇게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맡아주고 학교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주로 성과급의 S를 받게 됩니다. 그 외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거나 연구대회, 교사가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업무들에 참여하는 실적에 따라 개인의 평가 점수는 달라집니다. 교사의 노력을 수치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항목이 됩니다. 그렇다 보니 개인 발전을 위한 투자나 노력을 많이 하시는 선생님들은 자연히 업무량이 늘게 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성과급의 등급도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포 교사는 어떻게 일 년을 살아가게 될까요? 물론 교포 교사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의 일들을 따로 꾸려나가고 만들어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이야기입니다. 점수를 생각하지 않던 젊은 시절에도 저는 열심히 일 년을 살았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제 최선의 업무였고 거기에 곁들여진 도서관이나 정보 관련 제 일들을 다 처리하며 일 년을 매우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일들을 점수화시켜 보면 누구나 하는 평균점수에 그치고 맙니다. 승진을 위한, 학교를 위한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이 점수로 내가 평가되는구나 생각하면 억울할 때도 있었습니다. 옆반 선생님보다 내가 더 많이 학급을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을 잘 키운 거 같은데 상대가 표창을 하나 타고 연구대회 한 번 나가면 저보다 더 높은 평가점수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대외적으로 그렇게 잘하면 뭐 하나 자기 반 하나 못 챙기는데 하면서요. 아무리 개인 능력이 우수해도 교사는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데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저 사람에게 평가절하 당할까 싶어 분해 잠 못 든 날도 있었습니다. 병가를 두 달 낸 해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B등급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등급이 나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게 돈으로 환산되어 나오는 것은 더 불쾌했습니다. 나는 옆반선생님보다 50만 원 치 덜한 교사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작년에 같이 1, 2학년을 한 저와 이웃 교포 교사는 올해 성과급을 어떻게 받았을까요? 1학년과 6학년은 기피학년이라 두 학년은 추가 점수가 있습니다. 저는 1학년 담임이었어요. 저는 A를 옆반 2학년 담임선생님은 B를 받았습니다. 올해 3학년을 맡은 저는 내년에 B를 받을 차례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저 2등급이 나인 거 같아서 속상하고 두려웠습니다. 이 시점에 나도 뭔가를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공문함을 보니 주변 선생님들은 모두 학급일이 아닌 다른 나름의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초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사업마다 하나씩 따 오는 이웃 선생님들을 보면서 이 학교에서 나의 가치는 뭔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했을 때 저는 저의 가치를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학교를 위해 할 일은 없지만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서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내가 승진을 포기하고 평교사로 살기로 다짐하면서부터 외부로 나은 평가를 받는 것, 성과급으로 내 자리를 인정받겠다는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더 이상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부러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과정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성과 상여금은 교사에 대한 내 노력이 아닌 개인의 삶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간의 그 돈이 나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다른 것들을 위해 애쓰는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등급을 받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력에 대한 보상이니 더 애쓴 사람이 많이 받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더 이상 등급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옆반 선생님이 '선생님의 성과급은 B입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게 곧 내가 될 것 같아서 애가 탔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면서부터 내년에 내가 저 문자를 받더라도 올해보다는 의연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말 그대로 그 값어치의 돈일 뿐,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점수를 쌓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하고 내세울 수 있는 우리 반 담임으로서 저는 한 줌 부끄러움 없이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교포 교사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첫 번째는 성과급이 되었습니다.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돈에 나의 삶을 끼워 넣기를 버리고, 그 등급이 내 삶의 등급이 아님을 알아차리면 교포 교사로 내 삶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되려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받은 보답이니 오늘 하루는 밥하고 설거지하는 저녁을 접어두고 아이들하고 맛있는 식당에 가서 폼나게 먹어보렵니다. 사랑하는 내 부모님께 용돈도 통장에 꽂아드리며 자식 노릇도 좀 해야겠습니다. 부모님 눈에는 교감, 교장 안 해도 그냥 예쁜 내 자식입니다. 오늘의 저는 맛있는 거 사주는 최고의 부모이자 최고의 자식이 되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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