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비행일기_호주 브리즈번
9월의 마지막 비행을 호주 브리즈번으로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정말 오지 크루 (Aussie), 호주인 크루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호주 비행을 자주 간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동기들 모두가 다 그렇다. 호주 비행의 특징이라 하면... 몸이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다들 그래서 호주 비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다른 크루들이 느끼듯, 호주 비행이 힘들다. 하지만, 힘든 만큼 호주에 내리는 순간 느껴지는 분위기와 날씨를 나는 사랑한다. 한국인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편하게 느껴진다.
아, 그리고 호주를 사랑하는 이유 또 한 가지. 호주는 아시아 음식 맛집이다. 사담으로 한국인 동기 막내와 함께한 최근의 멜버른 비행에서 함께 마라탕을 먹었는데, 내 평생 처음으로 먹어본 호주에서의 마라탕 맛에 감동했었다. 워낙 마라탕이 한국에서 유행인지라, 비행을 막 시작하던 시절에 호텔로 마라탕을 시켜서 먹은 기억이 있다. 생각보다 나는 마라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즉,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는 뜻. 그 이후로 딱히 마라탕에 대한 감흥이 없었는데 요번 멜버른 비행을 통해서 마라탕의 진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크루들만의 하나의 법칙 아닌 법칙(?)이 있는데, 호주 비행을 가면 다들 한국 음식점에 꼭 간다. 고깃집에 가기도 하고, 치킨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대부분은 철판에 굽는 고기를 먹으러 간다. 나 역시 고기가 당기거나 크루가 좋으면 함께 나가지만, 혼자 호주를 즐기고 싶다면 굳이 함께하지는 않는다.
호주라는 나라를 좋아하지만, 비행만큼은 그렇게 사랑스럽지는 않다. 이번 브리즈번 비행은 '인도 시행인가..'싶을 정도로 인도인 승객들이 많이 탔었다. 그것도 내가 일하는 존에서. 내가 이전에 '외항사 승무원이 바라본 나라별 승객 특징'이라는 글에서 소개했듯이, 인도 승객들은 내게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음료를 권할 때도, 그들은 평범한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 다들 대부분이 샴페인과 와인을 원할 때, 그들은 위스키를 요구했다. 위스키도 그냥 위스키가 아니라, 위스키에 얼음 2조각을 원했다. 위스키만 원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위스키와 더불어서 물 한 잔도 요구했다. 알겠다면서 웃으면서 추후에 가져다 드리니, 계속해서 한잔 더 요구하거나 이번엔 와인과 먹을 것을 달라면서 계속 다른 것들을 요청했다.
뭐, 내가 하는 일이 승객들이 요구하는 걸 드리는 것이라 뭐라 불평불만하고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는, 내 천성도 그렇고 항상 승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항상 진심으로 서비스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바로 서비스가 나가야 해서 준비해야 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콜 벨을 누르고, 지나갈 때마다 붙잡고 요청하는 건 정말 힘들다. 시간이 없는데... 하지만 승객들은 승무원의 사정을 잘 모른다. 그저 원하는 것을 빨리 얻고 싶어 하는 마음 가득인 그들이었다. 그런 승객들의 마음을 잘 아는 나는 서비스 준비 전에 다른 크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빨리 준비해서 나갔다. 하지만, 너무나도 지체되는 시간과 팀 멤버들에게 미안해, 결국 서비스 준비를 위해 양해를 구하고, 카트 위에 와인이랑 준비되어 있으니 식사 제공할 때 함께 드려도 괜찮겠냐고 하니 괜찮다고 하는 그들이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면서 선배들과 선임 승무원들은 아이고.. 고생하네, 뭐 좀 도와줄까? 하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도와주려 노력했었다.
서비스 중에도, 서비스가 끝나고 기내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나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남들보다 작은 키로 인해 종종걸음으로 기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승객들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한 인도인 승객이 내게 은은한 미소를 띠면서 말을 건넸다.
"Hey, Ms. ***. You are doing a great job. Thank you for your service. I can see your effort."
(저기, **씨. 당신 되게 잘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당신의 노고가 보여요.)
예상치 못한 따듯한 그의 말에 더없이 큰 미소와 함께 나는 땡큐를 말하면서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여쭤봤고 그는 괜찮다고 했다. 나에게 위처럼 고마운 말을 건넨 승객들은 그뿐만 아니었다. 다른 인도인 승객들과 호주 승객들 모두 중간중간 나를 보면서 감사하다, 고생하는 거 눈에 보인다며 따스한 눈빛을 곁들여 말해주셨다. 아무래도 혼자서 다른 크루들보다도 기내 복도에서 눈에 띄게 서성거리면서 일하는 것이 여실하게 보였나 보다. 아니, 어쩌면 서비스 중과 끝난 뒤에 지저분하게 엉망이 된 내 머리를 보고 그런 말을 건넨 걸지도 모르겠다.
잠시나마 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든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든 생각, 바로 '그래. 진심은 어디든 통하는 법이야.'였다. 서비스를 준비해야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승객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 승객들에게도 보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니, 굳이 비행뿐만이 아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사랑하고 정성을 쏟으려는 나의 천성이 더욱 따듯한 진심으로 다가간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내 진심이 결국 일에 있어서는 승객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만족시켜 주려는 승무원으로 보인 것이고 말이다. 비록 문화나 국적은 달라도, 인간인지라 생각하는 마음은 하나로 통하기 마련이거든.
이렇게 언제나 진심은 통하니 항상 승객들에게, 그리고 이 순간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인연들에게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다해 도와주고 사랑하며 아껴주는 그런 승무원이자 사람 ***이 되고자 다짐한 비행이었다.
마지막 끝까지 오늘도 진심을 다해 일하고, 글을 쓰며 9월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