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헤이, 꼬마승무원!!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어허~어허"
"허허허....아..아파트 ^^"
학창 시절부터 그 얼마나 외국인과 친해지는 방법 중에 하나로 '노래'가 있음을 배웠던 나였던가. 시간이 흘러 벌써 30대가 되어가는 내가 외국에 살게 되면서, 그리고 외국계 회사에, 그것도 다양한 인종이 함께 일하고 전 세계 곳곳을 제 집처럼 다니는 승무원이 되어 글로벌하게 일하다보니 새삼 노래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함께 살고 있는 한국인 룸메 언니는 전직 승무원이다. 하루는 언니가 말하기를, 언니가 다른 회사 승무원으로 재직했을 시절 당시의 한국은 지금처럼 그렇게 발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한국이 당시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고 너무나도 좋은 국가임을 새삼 더 체감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겪어서 그런지 언니에 비해서는 확 와 닿지는 않는다. 허나 그럼에도 한국이 정말 좋고, 재밌는 게 많다는 건 매번 인천 비행을 가거나 휴가를 가면 느낀다. 이런 점때문에 나는 한국에 3일 오프가 있으면 몸이 피곤해서라도 간다. 심지어 매 휴가마다 한국에 가고,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크루들을 매 비행마다 꼭 한 명 이상은 만나니.
그런 한국이 더 인기가 많아진 데에는 분명 K-POP영향이 매우 큼에는 당연하다. 나도 블랙핑크를 좋아하는데, 최근에 블핑의 로제가 지은 아파트로 인해서 의도치않은 아파트라이팅을 매 비행마다 당하고 있다. 매 비행마다 꼭 나를 보면 한국인인 걸 알아채고는 아파트 노래의 후렴구를 부르면서 손동작도 따라서 보여주는 크루들이 한 명 이상은 존재한다. 착한 한국인 크루인지라 그걸 무시할 수는 없어서 허허허 웃으면서 함께 따라부르고 춤도 춘다. 그러면서 내게 진짜 이 게임 잘 아냐고 물어본다. 실제로 대학생 때 술 게임으로 자주 한 기억이 있던 나는, 나의 대학 시절에 친구들이랑 함께 많이 했었고, 술에 취하면 되게 재밌다고 말했다. 그러면 크루들은 역시 한국인들은 술에 강해라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말한다. 술자리에 너를 만났다면 난 널 술로 죽였을거야... 넌 집에 못 가... 그러면 다들 크게 웃으면서 다음에 인천 비행에 널 만나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파트라이팅에 갇혀버린 한국인 승무원은 매 비행마다 들려오는 아파트에 가끔 몸살을 앓고있다. 받아주기는 받아줘야하는데.... 매 비행마다 아파트 짓기에 춤까지 추면 내향적인 성향이 좀 더 많아진 ISFJ 승무원인 나는 참 난감하고 피곤하긴하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내 귀로 직접 때려박아 듣는 건 너무나도 좋은데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아.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춤은 나를 들썩들썩이게 만들어서 내 상상 속에서, 내적으로 내 스스로가 춤추는 건 좋은데 그걸 겉으로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함께 추고 싶지는 않아. 뭐 이런 느낌으로 피곤하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다. 그만큼 한국을 나만큼 좋아해주고 서로 더 친해지는 계기가 마련되어서 그나마 일로 인해 이미 쌓여있던 긴장감을 노래로 서로 풀어주는 좋은 순간이 되니깐 말이다. 최근에 다녀온 홍콩 턴어라운드 비행에서 만난 남자 부사무장님이 아주 한국을 사랑하고, 블랙핑크 특히 리사를 너무 좋아하는 분이셨다. 나를 만나자마자 아파트부터 시작해서, 다시 되돌아가는 비행기 정비 쉬는 시간에도 계속 블랙핑크 메들리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계속 함께 노래의 후렴구에 아는 부분이 있으면 춤을 추자면서 먼저 노래에 춤까지하면서 보여주셔서 옆에서 힘겹게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더니 매우매우... 행복해하셨다. 그런 그를 보면서 재밌기도 했지만, 왜 승객들을 응대하는 것보다 기가 3배는 더 빨리는 느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그 날 비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밥을 너무 맛있게 먹고 기절을 해버렸다.
가끔 승무원들 뿐만 아니라 승객들도 내 이름을 보고서는 오우 코리안! 아파트? 이러는 분들이 종종 요즘 계신다. 이렇게 노래로 하나가 되어 일하는 동안에 재미난 추억도 쌓고, 라포를 쌓는 직업이 세상에 얼마나될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이 어쩌면 외국인으로서, 외항사승무원으로서 일하면서 겪는 재미난 에피소드 중에 하나이고 특별한 추억이라 생각한다.
감사하게 생각해야지라며, 핸드폰으로 아파트라이팅에 갇혀 새벽 4시 28분 미국 뉴웍에서 아파트를 들으면서 둠칫둠칫 내적 춤을 갈기면서 열심히 글을 쓰는 꼬마승무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