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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May 18. 2024

[국밥로드] 종로 송암온반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나길 31-3 1층

온반, 참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요리를 주제로 한 어떤 만화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맛은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네. 경양식집에서 설렁탕을 먹는 느낌이랄까?"

제공하는 음식과 식당의 인테리어가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맛과 공간, 그리고 식당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곳을 소개하려 한다.

돼지곰탕과 수육을 주력으로 하는 종로구 익선동 식당이다.

원래 송암여관이라는 퓨전요리 선술집이었는데, 리뉴얼을 거쳐 2023년 12월 한식당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거리 인사동의 한 중심가에서, 1950대 국내 최고급 요정이 있던 자리에 운영되는 곰탕. 서민적이면서도 서민적이지 않은, 그러나 그 조합이 초장에 듬뿍 찍은 석화처럼 오묘하게 조화로운 식당이다.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화려하다. 뻥 뚫린 식당 한중간에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주변을 통유리로 둘러 테이블을 놓았다. 요정이 호황기였던 시기에 이곳이 얼마나 번쩍였을지 짐작이 가는 구조다. 내부 인테리어는 근현대를 닮았다. 주광빛 조명을 비추는 엔틱 한 모양의 등과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의 식탁이 있다. 하지만 그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한옥 구조가 인사동에서 곰탕을 팔고 있는 이곳의 정체성을 지켜준다.

온반은 맑은 돼지육수에 얇게 썰어 놓은 돼지고기(아마도 앞다리살 일 것이다)를 얹어 나온다. 특이하게 보리쌀이 섞여있다. 서민적인 정서까지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온반의 식감을 위해서는 성공한 것 같다. 쌀밥처럼 국물을 깊게 머금고 있진 않지만, 씹는 즐거움 없어 허무할 수 있는 곰탕에 재미난 식감을 준다. 국물은 육향이 가득하다. 뜨겁지 않은 온도로 제공되기 때문에 코로 느끼는 풍미가 더하다. 서울 중심가의 식당답게 양이 풍족하진 않으니 식사량이 많다면 3천원을 더해 특(14,000원)을 주문하시길.

함께 제공되는 (특제라고 말하는) 새우젓과 겨자간장 소스는 특별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다. 셰프의 킥까지는 아니어도 훌륭한 온반의 보조 정도는 된다.


들기름 막국수는 요즘 워낙 잘한다는 곳이 많아졌기도 하고, 사용되는 식재료의 평범성 때문에 강렬하게 기억되진 않는다. 소박하고, 정갈하고, 깊은 풍미보다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넘어가는. 송암온반이 제공하는 전반적인 한식의 느낌 그대로다.

술을 한 잔 할 생각이라면 수육이 제격이다.

생부추 위로 얇고 넓게 저민 돼지고기를 얹어 맑은 육수에 자박하게 끓여내는 조합. 테이블 위에서 고체연료를 태워 따뜻하게 데워주는 수육은 술자리의 온기를 지켜준다.

수육을 썰어놓은 모양 때문에 쌈처럼 먹게 된다. 얇은 수육은 넓게 펴고 위에 새우젓과 참나물 무침을 넣어 말아먹으면 담백한 맛과 식감이 일품이다. 최근 SNS에서 '선술 후안주'냐 '선안주 후술'이냐의 논쟁이 유행이었는데, 송암온반의 수육은 무조건 안주가 먼저다. 수육과 찬의 합이 만드는 풍미를 충분히 즐긴 후에 술로 씻어내는 것이 옳다.


퓨전 메뉴를 팔던 술집의 영업이 신통치 않아 업종을 변경했는 줄 알았더니, 한식 메뉴로 칼을 갈아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었다. 화려하지만 소박하고, 고급스럽지만 정감 있는 송암온반. 그리고 따뜻한 음식과 접대가 있는 곳. 이름 참 잘 지었다.




글쓴이의 신간 <단어의 위로>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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