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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Jun 01. 2024

[국밥로드 외전] 군자 이이요

서울 광진구 능동로32길 6

너를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광진구에서 뺨을 맞았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국밥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가 왜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가급적 음식을 남기지 않는 편인데,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나왔다. 기대에 대한 배신감과 먼 걸음을 찾아온 허탈함. 그리고 채우지 못한 허기로 인해 기분이 상했다.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술 한 잔 할 곳을 찾다가 보물섬을 발견했다. 일본요리 전문점 <이이요>다.


일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규동 체인점 중에 '요시노야'라는 곳이 있다. 주황색 간판에 초록색 글씨가 써져 있는. 주방 앞 닷지와 크지 않은 공간을 활용해 좌석을 배치한 모습이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왠지 제대로 할 것 같은 집이다. 번잡스럽고 산만한 입구(대기공간)에 비해 정돈되고 깔끔한 실내다.

둥굴레차를 우려 차갑게 내어준다. 곡물차는 너무 진하게 우리면 쓴맛이 난다. 미간에 남는 진함이랄까. 이이요는 요즘 날씨에 먹기 좋은 정도로 적절히 맑게 우려냈다.


메뉴판에 '간단한 저녁식사'라고 적혀 있지만 가격은 간단하지 않다. 대표메뉴 카이센동은 38,000원, 식사로 할만한 메뉴는 2만 원을 훌쩍 넘고 가벼운 메뉴도 15,000원 전후다.

카이센동은 3가지 종류가 있다(A/B/모둠). 각각 구색이 조금 다르다. 우니가 먹고 싶어 A메뉴를 시켰는데 재료가 소진되어 강제 모둠행. 옆테이블이 먹고 있는 사시미의 숙성도가 좋아 보여 묵은지 광어초밥 추가. 애피타이저용으로 문어샐러드 하나 시키고, 메뉴판에 없지만 추천받은 돈가스(어린이 메뉴)까지. 국밥집에서 뺨 맞고 이이요에서 화풀이하는 폭탄주문이다.

먼저, 카이센동. 맛은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후기들이 있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참치뱃살과 가리비, 전복, 연어 등등의 재료를 생각했을 때 비싸다고 할 수 없다. 특히나 무르지도 질기지도 않게 적절히 숙성시킨 선어와 전복내장으로 만들어낸 풍미 깊은 소스, 두툼하고 푸짐하게 담아낸 사시미를 생각하면 부담스럽지만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특이하게 초밥이 따뜻하다. 정통쉐프들은 맛을 위해서 얼음물에 손을 담그며 초밥을 쥔다고 한다. 그만큼 차가운 온도가 중요한 음식인데 밥이 따끈하다. 그런데 이게 싫지 않다. 이질감이 들거나 거북스럽지 않고 따스한 한 술을 뜨는 기분이다. 초향이 강하지 않은 샤리와 적절히 숙성된 네타, 거기에 잘 씻어낸 묵은지의 조합. 6피스가 모자라다.

아내의 원픽은 문어 샐러드였다. 무슨 소스로 만들었는지 자꾸 손이 가게 새콤하고 싫지 않게 달콤하다. 부드럽게 삶아진 문어숙회에 목이버섯, 아삭한 오이를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냉채소스와 닮았지만 덜 자극적이고 더 당긴다.

돈가스는 왜 메뉴판에 넣지 않은 걸까? 이렇게 잘 튀겨내면서. 두툼한 살코기에 얇은 튀김피. 소스가 공산품인 것 같아서 문어샐러드 소스에 찍어먹었더니 별미가 됐다.


밑반찬은 느 일식집, 이자카야, 회전초밥집에서도 맛볼 수 있는 딱 그 맛. 우동은 밀가루 풋내가 나는 면에 쯔유향이 나는 국물. 나쁘지 않지만 굳이 이이요에서 먹지 않아도 되는 맛이다.


식사비가 꽤 많이 나왔다.

국밥로드의 취지가 합리적 가격의 든든한 한 끼인데 상반되는 집이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쯤은 그럴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월급날이라던가. 데이트라던가. 혹은 기분전환이 필요해 평소와는 다른 것이 먹고 싶은 날이라던가.

아마 오늘이 그런 날이었나 보다.


<글쓴이의 신간이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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