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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Sep 25. 2024

[3화] We go high

JOB담(談); 열두 달의 에피소드

2월 첫째 주


중동국가와의 축구경기가 있은 다음날, 아침부터 사무실이 시끄럽다. 졸전 끝에 패배를 기록한 경기였다. 감독의 전술부재와 선수들의 투지부족 등 부진에 대한 원인분석이 이어졌다. 그러다 상대편의 경기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중동국가는 이기고 있으면 시간을 너무 끌어. 골을 넣은 다음부터 틈만 나면 누워있다니까! 페어플레이를 해야지. 오죽하면 침대축구라는 말을 하겠어!!"


맞는 말이다. 한국은 전반전 끝무렵에 선취골을 뺐겼고, 상대는 바쁜 후반전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특히, 아시아 축구강국 대한민국을 상대로는 더 그랬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그라운드를 굴렀다. 잔디에 코를 박고 뒹굴거리기도 했다. 국제경기뿐만 아니라 자국리그에서도 그런다고 하니, 중동국가에게 축구란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즐거움보다 종료휫슬 뒤의 스코어가 더 중요한가 보다.

문득, 침대축구가 정말 나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연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관중이 느낄 재미는 덜하겠지만, 어쨌든 이길 수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졌지만 잘 싸운 패배보다 비신사적인 승리가 더 이득이 많은 건 아닐까.


2월 첫째 주는 떠도는 소문이 많은 때다. 승진심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다수,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같은 편끼리의 전쟁. 그나마 노력 대 노력으로 맞붙는 선의의 경쟁이라면 다행인데, 이기기 위한 싸움에서는 필연적으로 부적절한 방법이 사용된다.

출신대학, 고교 혹은 지역 인맥을 구실 삼아 라인을 잡기도 하고, 시기의 실세 밑으로 줄을 서기도 한다. 그래서 술자리가 잦고, 어떤 곳에서는 성의표시를 빙자한 조공이 오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승진과 개연성이 있는지 증거를 들이밀 순 없지만 정황으로는 부인할 수 없는 일들이다. 더한 경우에는 경쟁자를 음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쪽의 성과가 운이었다, 부풀려졌다 등으로 폄하하거나, 개인사를 들추며 이미지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내가 돋보이는 것보다 상대를 깎아내는 것이 더 쉽고 빠른 방법이다.

승진 본연의 목적과는 맞지 않는 플레이지만, 정직한 승부보다 이 편이 더 효과가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단 이겨야 하니까. 그들에게 정정당당한 과정이란 이상적 낭만에 불과하다.


맥가이버라고 부르는 선배가 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서 막힌 일을 해결해 줬다. 못하는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입사할 때부터 과장이었고,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과장이다. 소위 만년 과장. 부지런하고 일도 잘하고 후배들도 잘 챙기는데 뭐가 문제일까 싶었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알 수 있었다. 승진심사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라인도 잡지 않고 아첨도 떨지 않는다. 평소처럼 그저 일만 한다.

호형호제를 하고부터는 그게 답답해서 타박을 했다. 맨날 일만 하지 말고 라인도 잡고, 높은 사람들 비위도 맞추고, 술자리도 따라다니고, 엄살 부리며 고생하는 거 어필도 하라고. 동료 챙길 시간 줄여서 그런 일 좀 하면 훨씬 더 쉽게 승진할 텐데 우직한 건지 미련한 건지 헛고생 중인 게 안쓰럽다.


그때마다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어떻게 해야 승진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승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거야. 외의 것으로 승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일하러 회사에서 일만 하기가 힘들어져. 조금 늦게 가도 괜찮아. 잘 가고 있는 거라 믿으니까."

말 수도 없는 사람이 입만 열면 멋있는 말만 한다. 이래서, 사람이 좋다.

미셀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기간 중 상대방의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이 저급하게 행동하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그래. 부끄럽지 않게 살자. 품위를 잃지 말자.

 


일상 단어에서 건져 올린 따뜻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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