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성호 Cha sungho Jan 31. 2024

포스트 맨은 벨을 울리지 않는다

                                                                             

1980년대 초 그러니까 내가 사회에 막 첫 발을 내딛을 때 즈음으로 기억된다그 당시 개봉된 유명한 영화가 있었는데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라는 미국 영화로 그 유명한 잭 니컬슨과 제시카 랭 주연의 19금에 가까운 영화였다우리나라에서 흥행 1위를 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영화나 원작 소설의 내용도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몇 년 뒤 나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영화 제목처럼 진짜 포스트 맨이 되었다.

군 복무 후 호텔에서 1년여 쯤 일하던 중 좀 더 장래가 보이는 직업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휴식 시간에 신문을 읽다가 부산체신청의 우편집배원 공채 공고를 보게 되었다시험과목은 국사와 한문 두 과목이었고 시험 일자는 두 달 뒤였다

우편집배원은 국가공무원 기능직10등급이었다어찌됐건 공무원 아닌가난 망설일 것도 없이 서점에 달려가서 수험서를 구입했고 그 때부터 근무 시간 짬짬이 수험준비에 몰두하였다.

그 때 난 호텔 그릴 즉 식당부서에 근무했는데 점심 식사타임이 지나면 저녁 식사타임 때 까지 서너 시간 정도 브레이크 타임이 있었다다른 동료들은 이 때 잠도 자고 쉬었지만 난 이 때를 활용해서 두 달 동안 수험 준비를 했고 마침 내 시험에 합격하였다

 


731일 월요일 정식으로 첫 출근한 날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우체국장님은 인근 다방에 전화를 하더니 커피를 시켰다응접 소파에 부자연스럽게 앉아있으려니 이내 짙은 화장을 한 다방아가씨가 옆에 와 앉더니 커피보자기를 풀어놓는다커피 맛이 영 아니었다얼마 전 호텔에서 마시던 원두커피 생각이 절로 났다

차성호 씨는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 했노?” 국장은 이제 슬슬 나에 대한 궁금보따리를 풀어놓을 참이었다옆에 앉은 직원들도 새로 발령받아 온 차성호라는 인물에 대해 무척 궁금한 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왜소한 체격에 햇볕에 그을린 적이 없는 하얀 얼굴하며 깔끔하게 자른 헤어스타일은 그들에게 무척 궁금한 일이었다

부산에서 호텔에 근무했었습니더.” “호텔?” 국장은 잠시 뜻밖이라는 표정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어쩐지 자네를 처음 보니 그런 이미지가 보이더라그런데서 일하다가 왔다카이 사실 좀 걱정 되네자네 앞에 발령받아 왔던 사람도 두 달 만에 그만 보따리 싸고 가삐릿제또 그 앞에 온 사람은 한 달도 못 붙어 있었던기라자네한테 오자마자 이런 얘기하는기 좀 미안하다마는 많이 걱정 되는구마얼마나 있을낀지...” 

국장은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옆에 앉아 있던 직원들도 다들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국장의 말을 들으며 내심 도대체 이 집배원 일이 얼마나 힘들기에 그렇게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국장과 직원들의 걱정스런 염려를 덜어줄 생각으로 선뜻 대답을 했다.

제가 그래도 보기보다 다릅니더여러 직장생활을 해봤기 땜에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꺼라예.” “하모 그래야지자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일단은 안심이 되네우리 앞으로 잘 해보자꼬.” 국장은 안심이 되는지 이내 얼굴이 밝아졌다그리고 나서 국장은 날 데리고 면소재지 안에 있는 면사무소며 파출소등 관공서를 다니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켰고 나는 그들이 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인사만 연신 꾸벅꾸벅 해댔다그렇게 통과의례를 치르고 나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국장은 날 데리고 인근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 백반을 시켜 놓고 우체국 생활의 이런저런 얘기를 시시콜콜히 해 주었다

나로서는 귀담아 들어 둘만한 얘기들이었으므로 그렇게 지루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집배원 생활은 한 달여 집배 구역을 배정받고 인수인계를 받으며 정신없이 지나갔고 서투른 오토바이 운전도 제법 숙달되어갔다

내가 맡은 구역은 국도를 따라 좌우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이 대부분이었다아침 일찍 첫 버스를 타고 우체국에 도착하면 이내 우편트럭이 와서 그날 우편 행랑 자루를 내려놓고 간다

우리 집배원 세 명이 먼저 출근해서 그 우편물들을 구역별로 구분하고 또 마을별로 집 순서별로 구분해서 묶어둔다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집 순서가 머릿속에 외워지게 된다

그러나 이 우편 집배업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고 앞 서 왔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게 된 까닭을 알 수 있었다집배원 인원에 비해 날마다 과다하게 쏟아지는 우편물을 처리하느라 삶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우편물에다 크고 작은 소포들까지 직접 배달해야 했다매달 정기적으로 도착하는 각종 공과금 고지서들부고장매일 배달해야 하는 신문들((하루 늦게 도착하니까 구문이 맞겠다광고 우편물선거공보 등 손 편지보다 훨씬 많은 인쇄물들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게다가 매일 오는 신문 한 부를 배달하기 위해 외딴 농가에 갔다 올라치면 작은 마을 하나 전체 배달 시간과 맞먹는 경우도 있다.

집배원들에게 우편물 한 통 배달 시간은 거의 초 단위로 다툰다느긋하게 하다가는 매일 해가 져야 우체국에 돌아오기 일쑤다비가 오는 날은 그야말로 최악이다비옷 입고 우편물이 젖을 새라 노심초사해야 한다미끄러운 논둑길을 운전하다 나락이 무성한 논으로 추락한 적도 있다날씨 맑은 날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우편물이 비록 많긴 해도 배달 속도는 빠르니까.  시골집들은 대부분 도시처럼 대문이 잠겨 있지 않고 개방되어 있고 대문조차 없다그래서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들어가서 마당을 돌며 대청마루에 우편물을 던지고 논스톱으로 나간다실력이 늘다보니 어떤 때에는 대청마루에 던진 우편물이 마루 틈새에 정확하게 꽂히기도 한다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마당을 돌면서 던진 농민 신문이 지붕 처마위에 올라가기도 한다그렇다고 집주인이 뭐라 하지도 않는다가장 당황스런 경우는 무더운 여름 날 오토바이를 타고 넓은 마당에 들어갔는데 우물가에서 멱 감던 할매가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경우다못 본 척 하며 우편물을 던지고 순식간에 빠져나온다.

우리나라 단독 주택들특히 시골집들은 거의 대문에 벨이 없다하기야 대문조차 없는 집도 많으니그래서 미국 포스트 맨 들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얘기가 나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아예 포스트 맨은 벨을 울리지 않는다벨 울릴 시간에 우편물 하나라도 더 배달해야 하니까ㅠㅠ.

작가의 이전글 쪽방 고시원의 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