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일어났소?” 일순 씨는 오전 9시가 되도록 인기척이 없는 5호실 문을 두드린다.
조금 기다리자니 안에서 꺼져가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 별로 생각이 없어~”
“아니 뭐라도 좀 먹어야 기운 내서 병원에 가 볼 것 아니오?” 일순 씨는 문을 빼꼼히 열고 얼굴을 디밀었다. 누워 있는 박 씨는 오늘도 영 컨디션이 시원찮은 모양이다.
“죽이라도 좀 들고 어서 병원 갑시다. 10시까지는 가야 의사 선생 만나서 약이라도 넉넉하게 받아오지.” 일순 씨 채근에 박 씨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는 칠십 중반의 독신이다. 후두암 판정을 받았지만 제대로 치료받을만한 여력도 없다. 그냥 그냥 지낸다.
하늘이 부르면 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 수급자 생계비로 월 이십만 원의 이 고시원 쪽방 한 칸에 몸이라도 뉘일 수 있다.
가끔 씩 가야 하는 병원을 고맙게도 일순 씨가 매번 보호자로 동행해 주는 신세를 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다. 하지만 없는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계절밖에 없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고 춥고 배고프다. 그래서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의 계절이다.
아니 삶 자체가 온통 추운 겨울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시원에 모여든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거처로 여기 한 평짜리 쪽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 그분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온종일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만 보는 사람, 대낮부터 소주에 취해 소리 지르며 옆 방 사람과 티격태격하는 사람,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TV랑 친구 삼아 하루를 보내는 사람......
하지만 그들은 말은 안 해도 따뜻한 온기가 그립고 사람의 체온이 그립고 대화가 그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쌀밥에 고춧가루 벌건 콩나물무침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장 일순 씨, 그녀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 동포다. 올해 오십 팔세를 맞이한 푸짐한 인상의 영락없는 우리 주변의 아줌마다. 이십여 년 전 한국에 건너와 독신으로 지금까지 억척같이 살아왔다. 일순 씨는 식당, 고시원 등 몸으로 때워서 돈 버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지금의 이곳 낡은 노량진 고시원에서 관리실장이라는 직책으로 (타이틀은 거창하지만 밥하고 청소하는 역할이다) 8년을 일하다 건물주로부터 이 고시원을 넘겨받은 지가 3년째다. 사정이 어려워진 고시원 주인이 게 딱지 같은 쪽방 열두 개의 이 낡디 낡은 고시원을 처분하려는 걸 고심 끝에 인수했다. 모아 놓은 돈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어떻게든 이 고시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8년 동안 여기서 정이 든 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방마다 누워 있는 걸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자신은 온갖 상처받고 이 낯 선 한국에 와서 부초처럼 살아왔지만 그렇게 모질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나이 들어 희망마저 끊어진 저 불쌍한 남자들을 내가 떠나버리면 누가 돌볼 수 있나?
이 추운 겨울에 뜨끈한 시래깃국에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눌 수 있는 이 낡은 곳이 고시원 식구들에게는 더없이 고맙고 마지막 인생의 정이 머무는 자리다. 일순 씨 그녀는 이곳 고시원 식구들에게 다정한 누이며 딸이며 엄마 같은 존재이다. 여기서 일하는 동안 벌써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가족도 없는 그들의 마지막까지 그녀는 가족의 역할까지 묵묵히 해내었다.
그녀는 이렇게 사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하다고 한다. 사람 사는 게 뭐 별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