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치가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살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온갖 일을 겪게 될 때가 많다.
나에겐 절대 아니,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 가운데서 너무 우쭐대지도 말고 너무 바보같이 굴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빠른 눈치와 처신이 필요하다. 센스와 매너가 장착되지 않은 채 산다는 것은 상대방을 피곤하게 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이와 비례해서 얼굴이 두꺼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쉽게 얘기하자면 세상 좀 살았다고 뻔뻔해지는 것이다. 흔히 닳고 닳았다고 말한다. 웬만한 도덕관념은 헌 고무신짝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도 예의가 바르고 남을 존중할 줄 알고 겸손하기까지 하다. 타인에 대한 민폐 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예민한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사람의 성향이 두 갈래로 갈리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영향, 가정교육, 형제자매 간의 관계 등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성장환경이 그 사람의 됨됨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됨을 유추할 수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빨간불 신호가 들어와 횡단보도 바로 앞에 정차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내 차가 맨 앞에 서게 되고 내 뒤에 줄줄이 차들이 대기하게 된다.
이럴 때, 맨 앞 차는 신호가 바뀌는 타이밍을 예의주시하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특히나 바쁜 출퇴근 시간대에는 더욱 그렇다. 신호가 바뀌면 곧바로 출발하는 기민함이 요구됨에도 휴대폰을 본다든지 딴짓을 하다가 신호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뒷 차들의 빵빵거리는 경적소리와 함께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게 된다.
사실 신호를 미처 못 보고 있었던 몇 초의 머뭇거림이 무슨 범법행위는 아니지만 사회생활 속에서는 다양한 처지에 놓인 불특정 다수인에게 큰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다 함께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의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신호 대기할 때 선두에 서는 확률보다 행렬 속에 있을 확률이 더 많기 때문에 앞차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심리상태가 된다. 신호가 바뀔 것을 주시해야 할 부담감 책임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딴짓을 해도 된다. 행렬 속에 즉 군중 속에 끼여 있으면 그냥 묻어갈 수 있으니 부담감이 별로 없다. 군중심리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경우다. 저 혼자서는 못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하면 용감해지는 사람이 있다.
인생이 어떻게 맨날 다른 사람들 속에 적당히 얹혀서 살 수 있는가?
자신이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내가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때로는 행렬의 가운데 끼여서 적당히 사는 것이 아닌 맨 앞의 선두가 될 때도 있다. 그것은 선두의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쳐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자고로 자신의 품질관리(?)를 잘해 나가야 한다. 나는 평소에 사람도 A, B, C등급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 있으면 안 되는 사람.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 분류 같지만 살아오면서 너무 많이 경험한 슬픈 결과이다.
내가 바쁘지 않다고 추월할 수도 없는 1차선 도로에서 천천히 저속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바쁜 사정이 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럴 때는 적당한 속도로 자동차들의 흐름에 맞춰 주는 사회적 센스가 필요하다.
역지사지로 내가 초를 다투는 바쁜 사정이 생겨서 빨리 가야 하는데 앞차가 천하태평으로 가고 있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사람이란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당신도 부지불식 중에한번은 선두가 될 때가 있음을 명심하라. 그 선두에 섰을 때 당신의 면모가 짧은 순간에 평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