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집 구하기

by 황혜경


이제 미국 살이 겨우 한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뭘 알겠느냐마는 이곳에 오래 산 사람들도 모두 동의하는 바를 하나 얘기해보자면 모든 것이 엄청 느리다는 것이다. 속도는 상대적이라 여기가 정상이고 한국이 유독 너무 빠른 것일 수 있지만 한국서 살다온 사람들로서는 아주 그냥 복장이 터지다 못해 심신이 너덜너덜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온몸으로 느낀 첫 사례는 바로 '집 구하기'였다.


나는 초반에 비용이 좀 들더라도 미국에 가서 직접 눈으로 집을 보고 계약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인즉슨 일단 아이와 둘이서 살 예정이라 큰 집이 아닌 one bed, one bath짜리 아파트를 구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나 대신 눈과 귀가 되어줄 리얼터(부동산 업자)들은 주로 싱글하우스나 콘도 매물을 취급하고 있어서 아파트 매물은 직접 찾아야 했고, 인터넷으로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아파트 내부 사진들은 하나같이 모델하우스급으로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는 게 중론이어서 직접 보고 계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달리 리얼터들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leasing office'를 두고 직접 임차인과 계약하는 아파트의 매물은 취급하기가 어려웠다. 일부 아파트 가운데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는 리얼터를 통해 임차인을 구하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물량이 많지도 않고 나의 조건과 맞는 걸 찾기란 더욱 힘들어 보였다. 나 역시도 평이 좋은 리얼터 분을 소개 받아 연락을 주고 받고 내 조건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 분이 보내주시는 매물은 하나같이 싱글하우스이거나 간혹 아파트가 끼어 있어도 내 조건과는 맞지 않았다.


나는 일단 내가 살고싶은, 아이를 보내고 싶은 학교로 배정받을 수 있는 구역에 있는 아파트들을 추려서 대략의 가격대와 구글 평점, 리뷰 등을 살펴본 뒤 우선순위를 정하고 아파트 투어 예약을 잡았다. 해당 아파트의 홈페이지를 찾아가보면 평면도와 virtual tour 등을 할 수 있고, self-guided tour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예약할 수 있어서 한국에서 미리 약속을 잡고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하는 집만 잘 찾으면 계약이야 금방 되는 건줄 알았다.


미국에 도착한 뒤 하루 이틀은 시차적응을 해야할 것 같아서 셋째날 일단 세 곳을 투어하기로 했다. self-guided tour가 뭔지 몰랐는데 말마따나 leasing office에서 내가 볼 매물들의 위치와 출입방법 등을 설명받은 뒤 혼자 직접 가서 둘러보는 형식이었다. 관계자와 함께하지 않으니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지만 즉석에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가장 우선순위로 꼽았던 첫번째 아파트는 미리 보고 온 사진과 매우 달라서 역시나 직접 와서 보길 잘했다며 self-comfort하고 나왔다.


두번째 아파트는 가격대가 좀 높았고, 아이의 학교도 2순위로 생각하고 있던 곳으로 가야하는 위치였지만 구글 후기도 좋은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본 매물의 층수와 뷰가 매우 좋았다. 첫번째 아파트에서 보안과 청결도 등에서 매우 실망을 한 터라 두번째 아파트로 마음이 기울었다. 세번째 예약해둔 아파트는 그냥 보지도 않고, 이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마음먹고 leasing office 직원에게 절차를 물어봤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그날 중으로 아파트 지원서를 쓰면 아마도 그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본계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말을 철썩같이 믿은 게 바보였다.


미국의 아파트 임대 계약은 참으로 특이한데, 아파트 소유자 측이 '갑 of the 갑'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집이 비어있고, 하루라도 내가 빨리 입주하는게 아파트 소유주로서도 이익일 거란 생각에 절차를 빨리 진행할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시차때문에 나도 모르게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오후 4시쯤 아파트 측에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라는 말도 참 우습지만 여하튼 미국에서는 아파트에 apply를 해야한다. fee도 있는데 만약 아파트 측에서 나를 거부하더라도 그 fee는 돌려받지도 못한다. 한 마디로 '내가 당신의 아파트에 살 자격이 있는지 검토해주세요'하면서 그 비용도 내가 내는 셈이다. 지원서에는 내 여권이며 통장 잔고며 한마디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담는다. 만약 미국인 보증인이 있다면 내 통장 잔고까지 보일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아파트 측에 '내가 월세 떼먹을 사람은 아니다'라는 걸 증명해야하는 외지인 입장에서는 있는 돈, 없는 돈까지 끌어모아서 '내가 이렇게 넉넉한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야하는 거다. 처음에는 '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집을 구해야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해야 아파트 측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답을 준다 라는 경험자들의 조언, 후기 등을 보고 나니 나도 똑같이 하게 됐다.


이제 지원서를 넣었으니 다음주 월요일이나 늦어도 화요일이면 연락을 줄 거란 말에 주말은 마음 편히 지냈다. 머물고 있던 숙소가 여인숙급이어서 매우 불편하고 얼른 내 집으로 옮겨가고싶단 생각뿐이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주말을 버텼다. 오판이었다. 월요일에도 그리고 화요일에도 답변은 오지 않았다. 이메일함을 수십 차례 열어보고 핸드폰을 손에 놓지 못하고 전화나 메시지가 오는지 살폈지만 화요일 저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뒷목이 당겨왔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 투숙 기간을 늘리면서.. 오늘 밤이면 이제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하루를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파트 leasing office로 처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해당 아파트는 숙소와 가까운 거리였지만 아직 차가 없는 탓에 버스도 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 leasing office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와 상담했던 직원은 없고 전에 manager로 소개받았던 남성이 front에 앉아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원래 어제쯤 답을 받을 거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어떻게 된 건지를 묻자 그 남성이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다. 원래 나와 상담했던 직원은 휴가 갔고, 또다른 직원은 승진해서 공석이 돼서 지금 나 혼자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어플리케이션의 status를 살펴보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내 지원서를 아파트 회사의 법무팀에 넘겼다는 거다. what!??? this morning???


그렇다. 그런 거다. 이 아파트는 leasing office 직원의 소유가 아닌 거다. 이들로서는 비어있는 아파트의 계약을 서둘러 처리해줄 하등의 유인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답이 갈 거라는 직원의 말을 믿고 안이하게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월요일에도 office에 와서 내 어플리케이션을 잘 받았는지, 지금 검토가 진행중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어야 했다. 한국에서라면 그럴 필요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전화 확인으로 충분하겠지만 여기는 전화도 여의치 않았다. office 전화로 걸어봤자 잘 받지도 않거니와 누군가가 받아도 담당자를 잘 바꿔주지도 않는다. 자리에 없다고 하기 일쑤. 나는 아파트 leasing office에 메일을 보내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재깍 답변을 주는 ivy나 sidney가 진짜 직원인 줄 알았다. 그들은 AI 비서였다는 걸 한참이나 지나서 알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그럼 오늘 아침에 내 신청서를 보냈으면 그럼 대략 언제쯤 답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물었다. "글쎄, 내일이나 모레쯤?"


그 말을 믿고 또 기다려야하는 내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일단 오늘은 물건너 갔으니 숙소 예약을 이틀 더 연장했다. 아이와 함께 아파트를 걸어나오는데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아래 정말 겉과 속이 다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leasing office에 갔다. 첫 투어때 상담했던 직원이 그날은 나와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고 법무팀이 review중인 사안이라 여기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연락처조차도 없는 듯했다. 다시 금요일을 맞고 나니 이 집 한곳에 목 매달고 있는 게 과연 맞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지금이라도 패스했던 세번째 집도 보고, 맘에 들지 않던 첫번째 집에라도 당장 들어가는게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동네 아파트들을 다시 살펴보고 평점이 좀 나쁘더라도, 리뷰가 좀 안 좋은 게 있더라도 막상 직접 보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며 재검색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집 주소가 없으면 다른 일은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 어떤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예외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국 도착 첫날 은행 계좌부터 만들려고 은행에 갔는데 사실 집 주소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 친구분이 가까운 곳에 사셔서 그 분의 주소지를 임시 주소지라고 얘기하고 계좌를 개설했다. 담당자분이 임시 주소를 받아주겠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깐깐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날 계좌를 못 만들었을 수도 있다. 자동차 등록이나 운전면허증 변경 신청을 하려 해도 주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일단 지인의 주소로 임시로 등록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도 거주 증빙을 위해 은행에서 메일로 받은 서류 등을 제출하라고 한다) 아이 학교 등록만큼은 내가 실제 거주할 곳의 주소가 필요했다. 학교 배정을 사는 곳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주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그곳에 산다는 증빙까지 함께 제출해야 한다. 임대 계약서 등이 필수인 것이다.


개학 날짜는 이제 코앞으로 닥쳐왔는데 아직 집 주소조차 없으니 입이 바짝바짝 마를 일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집을 계약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는 들지만 언제 답을 줄지도 모를 집을 마냥 기다릴 것이가. 주말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종일 폰을 보거나 게임하기 바빴지만 나는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 아이를 제지도 못하고 다른 걸 시키지도 못했다. 월요일에는 또 다른 아파트 투어를 해보기로 두 곳을 예약해두고 배수진을 친 마음으로 다시 leasing office를 찾아갔다.


하지만 월요일에도 leasing office 직원은 자신도 아직 들은 얘기가 없으며 '빠르면 오늘 오후'에나 답이 오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이 직원이 아무 권한도 없는 걸 알면서도 절로 하소연이 나왔다. 너희가 지금 얼마나 내 시간과 돈을 갉아먹고 있는지 아느냐, 그리고 나는 아이 학교도 등록해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오래 답을 안 줘서 아이 학교 등록도 못하고 있다, 나는 더이상 기다리기 힘들다, 아무래도 다른 집을 알아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이쯤 되니 약간 오기도 생긴 게, 아니 대체 얼마나 괜찮은 집이길래 이렇게 튕기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긴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데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아파트 투어도 하긴 했지만 그런 오기가 더해져서인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월요일도, 화요일도 지났다.


'Your application has been approved!'라는 메일을 받은 건 화요일 오후 5시쯤이었다. 막 숙소 예약을 하루 연장하려던 찰나였다. 이게 뭐라고 참.. 눈물이 핑 돌았다. 당장 계약서에 사인하러 가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다음 날 일찍 가기로 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의도치 않게 2주 동안이나 머물렀던 숙소에서 짐을 빼고 leasing office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직원은 그간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이해하는 듯, 원래는 계약 하고 보증금이 들어올 때까지 집 키를 줄 수 없지만 집에 들어가서 쉬라며 키를 먼저 내주었다. 보증금을 내려면 은행에 다시 가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짐을 일단 풀고 식사도 하고 오후 느지막이 은행에 들러 송금했던 걸 생각하면 그 직원 입장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내게 베푼 셈이었다.


여하튼 나는 집구하기 대장정을 통해 미국에서는 마냥 기다리는 것은 절대로 현명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계속 물어보고 쪼아대고 확인을 해야 조금씩이라도 진행된다는 점을 체감했다. 집구하기뿐 아니라 운전면허증 교환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이건 그래도 내가 조금 현명하게(?) 대처해 기다림을 줄일 수 있었다. 이 얘기는 다음 편에서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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