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쯤 되면 관계가 어렵지 않을까. 가까울수록 더욱 어렵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힘들게 할까 살펴보니 '기대'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이효리와 엄마가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의 2~3분 남짓하는 짧은 영상을 보면서도 꼭 한 번은 눈물이 새어 나온다.
내가 느낀 효리 님이 엄마에게 서운한 지점도 바로 기대 때문이다. 과거의 엄마가 좀 더 성숙한 어른이었으면 어땠을까. 이효리 그녀처럼 당당하고 적극적인 여성이었다면 나았을까. 그녀의 기대가 읽힌다. 먹고살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했던 겁 많은 엄마. 엄마는 왜 내가 원하는 더 씩씩하고 성숙한 어른이 아니었냐고 계속 묻고 따지고 싶은 듯하다. 그리고 그녀의 기대와 어긋난, 과거의 그리고 현실의 엄마에게서 계속 상처 받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그녀만의 이야기일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단품으로 주문할 수 없는 콜라와 감자 튀김처럼 실망이 반드시 따라오는 세트 상품이다. 타인은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나의 기대라는 상자 속에 얌전히 담겨있는 선물이 아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겨울이면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지만 여름이면 옆 사람이 37도의 열 덩어리로 느껴져 존재만으로 서로를 증오하게 된다 했다.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감사함의 또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감정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내 마음에 뿌리를 둔 감정인 경우가 많다. 내가 바라보는 타인은 있는 그대로의 타인이라기보다 나의 무의식적인 욕망과 기대, 감정 등이 뒤섞인 마치 나의 내면의 영사기로 비춘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과도 같은 존재다.
가까운 존재에게 갖고 있던 기대감은 내려놓고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을,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대보다 못한 부모일 수도 자식일 수도 배우자일수도 있는 우리 모두니까. 그냥 그 모자람까지 인정하고 애틋하게 바라볼 때 그 빈자리를 채울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니까.
단, 이 말은 나에게 해를 입혀도 가족이니까 배우자니까 사랑해라가 아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지켜야 할 존재는 나 자신이다.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인연은 가족이라도 오랜 인연이라도 거리를 두거나 보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