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형제는 또 다른 살인?

[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

[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


사형제는 또 다른 살인?


 머나먼 옛날, 위대한 학자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며 한 이야기를 근거로 들었다. 끔찍한 범죄를 수없이 저지른 악당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악당이 물을 마시러 우물가를 찾았다. 근데 어떤 아이가 우물가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지려 하자, 그 순간 악당은 아무 생각 없이 허겁지겁 뛰어가 아이를 붙잡았다. 아이의 목숨을 살리는 것에 악당은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는데 말이다. 

 사람은 본래 선하다는 이 맹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악이 결코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과연 그 말은 진실일까.


 맹자의 이야기대로라면, 지금 이 세상엔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부모는 친자식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식은 늙어버린 부모를 버린다. 연약한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납치와 노예제 역시 어떤 시대에서도 그 맥을 끊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본성이 선이 아닌 '악'으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 [ 종의 기원 ]에서는 사람 같지 않은 사이코패스 청년, '유진'이 어떻게 우리 안에 내재된 악을 발현시키는가를 그려낸다.

 유진은 피비린내에 잠을 깬다. 그의 방은 온통 피범벅이고, 거울 속에 비친 것은 유진이 아닌 한 마리의 빨간 짐승처럼 보였다. 그는 어머니와 이모가 평생토록 강요해온 정신과 약을 몰래 끊는 행위에 중독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그 결과가 유진조차 예상하지 못하는 발작 증세라는 것이다. 유진 스스로 '개병'이라 부르는 이 발작은 유진의 기억과 함께 몸의 통제권 역시 앗아가곤 했다. 


 그리고 어젯밤 유진은 이 개병에 이끌려 집 밖으로 뛰쳐나간 후 기억이 끊겼다. 누구의 피인지 알기 위하여 비틀대며 거실로 나온 유진은 목이 잘려나간 어머니의 시체와 마주한다.

 어머니는 이제 유진에게 어떤 강요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원인을 찾기 위해, 유진은 개병에 날뛰었던 자신의 어제 기억을 헤집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유진은 어젯밤 동네에서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사라진 원인을 찾아헤매는 이모와, 입양된 형 '해진'은 유진에게 계속해서 의문의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유진은 기억과 증거가 드러날수록 이 모든 사건들이 단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자신. 과연 유진은 스스로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저자 정유정은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살인'이 인류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한다. 만일 살인이 있지 않았다면 인류는 서로 경쟁하는 방법을 잊었을 테고, 발전하지 못해 결국 멸종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조상들이 행한 '악(惡)' 위에서 태어난 셈이다. 


 그런 우리가 본능에 새겨진 악을 법으로, 사회로, 이성으로 억누르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저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선과 악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드는 타인을 해치는 상상을 한다. 물건을 훔치고, 이성을 범하고, 파괴와 혼돈을 추구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악'한 것일까. [ 종의 기원 ]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내면의 거울을 직접 바라보게 한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독자가 결코 예상치 못하는 놀라움을 이 장르가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독자는 두근대는 심장을 느끼면서도 책장을 놓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도 역시 [ 종의 기원 ]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객체가 아닌 살인자 '유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쉽사리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줄거리가 촘촘히 짜여있다. 또한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될법한 사이코패스 유진의 심리를 독자에게 직접 들려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어쩌면 유진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정유정 작가의 치밀한 계산 위에서 우리는 유진과 함께 작품 속에서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급적 우리가 선한 존재이길 바란다. 선이란 그릇되기보다는 바름을, 어둠보다는 빛을 연상시키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둠이 없다면, 빛 또한 있을 수 없다. 악이 있기에, 선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우리 내면을 한 번 바라보자. 사랑스럽게 꿈틀대는 악의 존재를 인정할 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실재함을 느낀다. 피하고만 싶었던 진실의 맨얼굴을 당신이 보고자 할 때, [ 종의 기원 ]은 당신에게 티 없는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진짜 빌런은 킹스맨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