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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효주 Jul 07. 2023

보고싶어서 왔어....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너는 니 아들 때문에 아파서 울지? 그렇게 사는 너를 평생 바라보는 내 맘은 어떻겠니?”

아들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파 전화할 곳이 없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말도 못 하고 펑펑 울던 그날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되뇌며 가슴 끝을 울리는 말!!     



“니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

이혼 후 함께 살다가 시골로 내려가시고 어느 날 갑자기 “나 지금 KTX 탔어”라는 말을 남긴 엄마!! 그리고 모든 식구들이 아버지 혼자 두고 서울에 왔다며 다들 야단 법석이었던 그날 내 차에 올라타고 엄마가 했던 말!!

아들을 기르며 “보고 있어도 그립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고 그 맘이 느껴져 혼자 다닐 때마다 눈물이 났던 한 문장!!





내 고달픈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잡고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모두 보상받았다는 마음으로 그 고닮픔을 다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귀한 내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이 뱃속에 있는 동안은 알 수 없었다. 태교가 어떤 건지? 나는 십자수로 내 키만 한 이불을 하나 만들었다. 남들이 보면 태교로 바느질을 하고 있는 듯 생각했지만 그냥 내 심신을 달래기 위해 내향적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아이를 낳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엄마가 된 게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눈을 가진 아들!!

세상에서 가장 오똑한 코를 가진 아들!!

세상에서 미소가 가장 예쁜 아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생각하는 듯 울지 않았던 순둥순둥한 아들!!

정말 너무 예뻐 자랑이 무지 하고 싶었고 가슴이 터질 거 같은 아들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보물은 더 귀해지고 더 소중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나의 엄마를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어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애물단지!!    

나는 제왕절개를 해서 아들을 낳았다. 배가 아파 일어나 앉을 수 없었음에도 산부인과에서 엄마가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애기가 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은 내 모습을 보았다. 아픈 것도 알 수 없었고, 어쩜 그리 예쁠 수 있을까? 세상에 잘생긴 아들은 내 아들뿐인 거 같았다.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내가 저 아이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맘! 그런 아이들을 엄마는 셋이나 낳은 것이다.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고 아들을 얻은 건 축복이었지만 그 아들을 얻은 대가는 참으로 혹독했다. 결혼 전에 “딸이 참 예쁘네요” 소리를 듣던 내 엄마의 딸이 맞는 걸까? 결혼을 하고 나는 제대로 된 쇼핑을 해본 적도 어떤 옷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인지도 모른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생일날 친구가 찾아와 옷 선물을 하겠다며 데리고 나갔지만 나는 어떤 것도 고를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일 나간 어느 휴일 날 엄마, 아버지가 놀러 오셨다. 같이 시장구경을 나갔고 피곤함으로 가득한 나는 가게 앞에서 안 가겠다고 보채는 아들의 등을 찰싹 때렸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너무 많이 속상해하시며, “내가 사는 게 힘들어 너희들 키울 때 그랬어! 그런데 네가 꼭 그 모습이네!”라고 말씀하셨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들이 조금씩 크며 자식이란 희망이고 기대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우리 엄마도 그랬을 텐데 싶었다.   

   



애물단지가 돼버린 기대주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은 계속 들어왔지만 돈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 반복된 잘못된 선택은 부모님의 마음도 힘들게 해 드릴 수 밖엔 없었다.

아버지는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작은 아버지와 의논을 하셨고 작은 아버지가 내게 하신 말씀은 “떨어져 살면서 좋은 것만 보여드려라”였다. 시골에 부모님이 내려가시던 날 많이도 울었다. 나의 맘은 다 같이 잘 사는 일이었는데, 호강을 시켜주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맘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린 일들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의 기대주였건만~ 얼마나 마음이 절망적이었을까?     


엄마가 내려가시고 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던 때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아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며 큰 갈등은 없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편치 않았다. 

어느 날 혼자 집에 있는 아들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파 전화할 곳이 없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말도 못 하고 펑펑 울던 그날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은 

너는 니 아들 때문에 아파서 울지평생 그렇게 사는 너를 바라보는 내 맘은 어떻겠니?”였다.

두고두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되뇌이며 가슴 끝을 울리는 말이다.     

나는 지금 알고 있다. 아무 일 없이 잘 크고 있는 아들, 딸들이어도 그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슴 끝이 아픈 게 부모라는 사실을..     




그리움으로 가슴을 메우는 자식!     

출근하기 위해 학원으로 운전해서 오는 길 그리고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모두 아들을 보고 나왔고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아들이 나는 늘 그리웠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아들이었고 잠들어있는 아들을 하루 저녁에도 몇 번이고 가서 만지고 뽀뽀하고 잘 있나? 또 가서 보고 하는 게 나의 일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엄마가 그 시골에서 제주도 여행을 가셨다 들었다.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나 지금 KTX 탔어.”라는 말을 남겼다. 모든 식구들이 아버지 혼자 두고 제주도에 다녀와 놓고 또 서울에 온다며 다들 야단 법석이었던 그날 내 차에 올라타고 엄마가 했던 말은 니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였다.      

나는 내 아들과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아들이 그리운데 엄마는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을까? 하는 맘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작은거인 에서도 썼듯 나이가 들며 몸은 멀어지지만 가슴속 깊은 곳으로 한없이 더 파고들며 아리게 만드는 존재가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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