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공중전까지 돌았다 생각했던 내 인생에 다시 한번 위기가 왔다.
스스로 다섯 수라는 징크스를 만들어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2022년 나의 소중한 보물이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
대학을 갈 수 있을까? 했던 나의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고 나름의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다행이었던 건 코로나 한복판에 학원을 오픈하고 나의 경제상황은 많이 위태로웠지만~
학원은 또다시 잘 되어가고 있었다.
겨울특강이 끝나고 3월, 4월을 거치며 디테일과 준비도 없이 나는 막연한 초초초 긍정의 여신이 되어있었다.
5월, 6월이 되며 오픈하던 해에 등록을 받은 학생들 중 가장 성과가 좋은 학생이 혼자 해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다가왔고 내가 중3, 고1의 타이들을 걸었기 때문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 1년 반 동안 열심히 달려 1등급을 만든 학생이 혼자 하겠다 하는 말에 허탈감이 몰려왔다.
성적을 적당히 올려줬어야 했나? 하는~;;
나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이 빠질 때를 대비한 학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2학생들의 퇴원으로 갑작스레 1000만 원의 매출이 하락을 했다. 매출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만으로 가득 채워진 긍정의 아이콘인 나의 지출들!! 갑작스레 불안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학원에 몰입해야 하는 나에게 아들은 독립을 시켜달라 한다.
집이 갑갑했던 것이다.
동생과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면 아들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곡을 쓴다며 밖으로 나가 아침에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웠다.
역시나 독립을 시켜달라 말을 하는 아들!!
나의 스무 살 시절의 경험치와 감정이입이 함께 이루어지며 혹시나 아들이 나와 같은 결정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맘에 불안감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선택이란 걸 해야만 했다. 아들의 독립을!!
아들을 독립시키는 과정은 참 험난했다.
500~1000만 원짜리 원룸을 얻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건만~
생각과 달리 음악을 하는 아들이 좀 더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고 깨끗한 집을 얻으려면 3000만 원의 보증금과 1000만 원가량의 장비 및 세팅비용이 필요했다.
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거지?
매출은 줄고 대출은 막히고~ 답답했다.
독립을 시키던 날 책상 하나 없는 오피스텔에 아들의 짐을 옮기고 '엄마가 주문 해났어'라는 거짓말을 하고 되돌아 나오며 많이도 울었다. 내 눈에 눈물자국이 마를 날이 있긴 한 걸까?
이놈의 눈물샘은 왜 마르질 않는 걸까?
한 달여에 걸쳐 세팅을 해주고 아들에게 "너무 늦어서 미안해"라는 말을 했을 때 나에게 되돌아돈 대답은 "엄마!! 돈이 많으면 최상의 장비를 갖추고 매일 곡을 하나씩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대신 생각을 깊이 있게 할 수 있었잖아!"였다.
참 말도 고맙게 해주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아들의 독립 이후 나는 밥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경제 상황은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유는 학원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이유는 내가 삶의 이유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 우울감이 왔었다는 걸!!
아들을 먹이기 위해 하던 밥도 하지 않게 되었다.
서울의 집값은 터무니 없이 비쌌고 곧바로 인천으로 이사를 나오면 되었을 일을 나는 아들옆에 있고 싶어 미련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겨울방학 설명회에서 나는 학원의 선생님과 결별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선생님과의 갈등은 학원에 더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피하고 싶었고 1년의 수익을 결정하는 겨울방학을 나는 망치고 말았다.
2023년의 나의 삶은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