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만보를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하루에 만보씩 걷는 게 건강의 척도가 될 정도 아니겠는가?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귀국하는 마지막 날을 빼고는 매일 이 만보씩 걸었다. 체력이 남들보다 좋아서도, 관절이 좋아서도 아니다. 오사카가 그만큼 볼거리가 많고 걷는 즐거움이 있었던 도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사실 일본여행이 이번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신혼여행으로 처음 일본 여행을 했는데 당시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던 시절이라 크게 기억에 남은 건 없다. 그 후에도 두어 번 다녀왔지만 패키지로 짧게 훑는 정도였기 때문에 솔직히 온천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이번 오사카는 오랜만에 떠난 일본 자유여행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걸 준비했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들에 대한 정보를 찾고 계획을 세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얻은 것도 많은 여행이었다.
그럼 하루에 이만보를 걷게 해 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도시 오사카'였다.
간사이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난바 버스터미널에서 하차 한 뒤 처음 만난 건 '난바워크'였다. 난바워크는 난바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 있는 지하상가로 을지로 지하상가를 연상케 했던 곳이다. 난바워크는 지하상가가 날씨의 영향을 덜 받고 신호등의 걸림 없이 걸을 수 있어 도심 오사카를 다니기에 무척이나 편했다. 게다가 카페와 식당 그리고 액세서리 숍까지 있어 무척이나 편리했다. 실제로 두 끼를 난바워크에서 먹었다. 난바워크를 걸어 '난바파크스'로 향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공원으로 쇼핑몰 옥상을 정원으로 꾸민 곳이다. 옥상에 정원이 있는 곳은 많지만 이곳은 조금 특이했다. 계단식 공원이었다. 쇼핑몰이 통으로 쭉 올라간 건물이 아니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라 자연스럽게 계단식으로 마감이 되었는데 그곳을 정원으로 꾸민 것이다. 처음 갔을 때는 작아 보였는데 막상 돌고 보니 꽤 넓은 공간이었다. 쉴 곳도 많고 조용한 곳도 많아 도심 속 휴식의 공간으로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시 오사카의 모습의 끝장 판인 곳이 있었는데 바로 '우메다 공중정원'이었다. 사실 식물이 있는 정원이라기 보단 전망대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왜 정원이란 말을 붙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우메다 공중정원 자체가 하나의 멋진 화원을 닮았다. 유리와 철제로 만들어진 인공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화원 같이 느껴졌다. 야외 정원은 또 어떠한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조차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밖임에도 불구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구조였다. 흡사 '미래 도심 정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렇게 도시적인 오사카가 하루에 이 만보를 걷게 해 준 첫 번째 원동력이었다.
두 번째 원동력은 '동심'이었다. 사실 동심이라고 썼지만 어른 아이 모두 다 좋아할 만한 요소인 '애니메이션'이다. 오사카에서 가장 신나게 돌아다녔던 곳은 바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었다. 사실 처음 오사카 여행을 계획할 때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조카들과 이야기하다 우연하게 이야기가 나왔고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곳이긴 했지만 결론은 가장 신나게 논 곳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에 들어가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놀이 기구를 좋아하지 않아 생전 놀이동산을 가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놀이 기구를 타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게 되었다. 게다가 게임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닌텐도 월드는 행복 그 자체였다. 굿즈샵과 거리의 퍼레이드 또한 행복함을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곳은 바로 백화점 내 캐릭터샵이었다. 두 곳에서 나는 '추억'을 즐길 수 있었다. 예전 일본 애니메이션 CD를 어렵게 구해 어설픈 자막과 함께 보던 시절의 추억을 말이다. 특히나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들이나 '스누피' 같은 굿즈들은 젊은 시절 나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동심과 추억 덕분에 이 만보는 가뿐히 찍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원동력은 '과거'였다.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일본의 옛 것은 두 곳을 들렸는데 '시텐노지'와 '오사카 성'이었다. 이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곳도 한참을 머물 고 싶었던 곳은 '시텐노지'였다. '오사카 성'은 천수각까지 들어갔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의 주인이었던 인물 때문인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남아있다. '시텐노지'는 백제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이곳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일본의 전통적인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통 정원, 신사의 도리 그리고 사찰의 모습 등을 말이다. 시텐노지 서쪽 문으로 들어가면 신사에서 볼 수 있는 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사찰에 도리라니 한국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조금 낯설지만 여긴 일본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본 당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본당, 탑전, 그리고 자갈로 만든 정원이 꾸며져 있는데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이었다. 아쉽게 본당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곳으로 절을 할 수가 없어 그 옆 다른 법당에 들어가 삼배를 했다. 그리고 본당을 둘러싼 회랑을 천천히 걸어서 돌았는데 왠지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3박 4일 간 7만보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사카를 둘러보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특히나 우메다 지역은 거의 공중정원 밖에 가보지 못해서 다른 백화점이나 거리를 좀 더 둘러보고 싶은 아쉬움이 있는 곳 중에 한 곳이네요. 어쩌면 이런 아쉬움이 다시 오사카를 가야 할 핑곗거리가 될 지도....... 내년 다시 만날 오사카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