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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Nov 27. 2023

수상한 서점 03.
여행자에게 집을 내어주는 사람들

수상한 서점


03. 여행자에게 집을 내어주는 사람들 


  이자카야 사장님이 우리를 조용히 시켜야 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나는 이 날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할 예정이었다. 여러 명이 같이 사용하는 숙소이기에 안전을 위해 10시가 되면 대문이 닫히는 곳이다. 신데렐라처럼 통금시간이 있는 것이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내가 끊어야 함이 송구스러웠다. 조심스레 가봐야 할 시간임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 사람들. 서로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난리다.      


"네? 우리 처음 만났는데 집을 내준다고요?"

"우리도 여행 다닐 때 신세 많이 졌어요. 자고 가도 돼요. 정말로"

 

나는 우리 집을 그렇게 쉽게 오픈하지 않는다. 자고 가는 것 말고 그저 방문하는 초대도 한참 관계가 깊어져야만 하는 것인데 이 호의는 뭐지? 믿지 못할 정도로 넘쳐흐르는 인심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이들은 나랑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엄마랑 헤어지기 싫은 어린아이 같은 모양새로. 그래. 나도 이들처럼 나의 순수한 감정을 길어 올릴 때이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 보자. 이런 유쾌한 사람과 함께라면 하룻밤쯤 낯선 곳에서 묵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 또한 이 멋진 사람들에 대해 더 알고 싶은걸.  숙소에 못 들어간다고 전화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볼 만큼이나 우리의 마음도 그 누구보다 열정으로 불탔다.      


나는 결국 어떤 집에 가서 잘 것인지 행복한 고민을 하다 첫 인연이 닿았던 서점 사장님 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그녀의 집에는 언제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둔 듯이 정갈하게 정리해 둔 침구와 필요한 집기가 모두 구비된 방이 있었다. 내가 예약해 놓은 숙소보다 훨씬 멋진 곳. 이거 꿈은 아니겠지. 어떤 멋진 배우도 자고 갔다던 그 방에 몸을 누였다. 이 이상한 경험과 벅찬 감정이 혹여나 잊힐까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취기가 올라와 이내 잠들었다.           


느지막이 눈을 떴다. 다행히 지난밤은 꿈이 아니었고 잊히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술을 마신 탓에 저려오는 다리를 주무르며 정신을 차려본다. 부스스한 머리로 나타난 서점 사장님은 굿모닝을 외치며 해장을 하러 가자고 했다. 각자 준비를 마치고 서점에서 모였던 세 명이 해장국집에 둘러앉아 ‘크아’를 외친다. 


그렇게 해장을 한 후 같이 서점문을 열고 들어가 오픈을 한다. 지난밤 이야기가 타올랐던 그 자리에 식후 커피를 내려주시는 사장님. 밤과 낮. 모두 좋구나. 이 서점. 우리는 다시 한번 수다꽃을 피웠다. 술기운이 빠져나간 맨 정신임에도 여전히 무언가에 취한 듯 끊임없이 입을 털었다. 결국 점심끼니까지 해결해 가며 늦은 오후까지 함덕의 그 작은 서점을 떠나지 못했다. 일주일, 한 달 살기도 아니고 짧은 2박 3일 여행인데 여기서 시간을 다 보내버리면 어쩌냐며 걱정하는 사장님이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여기서 사람과의 이야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이보다 더 멋진 여행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여행에서 얻어지는 익명성은 

진지한 이야기도 꺼내게 하는 힘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꿈을 꺼내본다.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며 그렇게 깊어진 밤. 

나의 여행의 순간 전부를 통틀어 가장 빛나던 밤.      

애초에 계획했던 것들은 실패했지만 

사람과의 깊은 이야기가 남았다. 

여행이란 타인이 끼어들 여지를 남겨둘 때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내가 배운 점이다.

여러분의 여행에도 타인을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을 남겨두길 바라며. 




첫 번째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에 관한 생각과 여행 속 에피소드를 글로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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