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실컷 책과 함께이고 싶어 숙소마저도 북스테이면 어떨까 싶었다. 더불어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싶었다. 제주 친구가 된 수상한 서점의 사장님은 나에게 사모님의 웬 서민 체험이냐며 놀렸다. 그런데 궁금한 걸 어째. 나는 20대 때 이런 제주 게스트하우스 낭만을 누리지 못했는데. 대학생인 척 해보겠다는 다소 귀여운 포부를 품고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결혼 전 다녀온 유럽 배낭여행에서 도미토리를 이용해 보긴 했지만 그 이후 여행에서는 줄곧 말끔한 호텔 아니면 쾌적한 펜션에서만 묵어왔다. 오랜만에 타인과 같은 룸을 쓴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밖에서 본 게스트하우스 건물은 생각보다 조그마했다. ‘이 작은 집에 그 많은 인원이 묵을 수 있다고?’ 예약 페이지에서 봤던 룸의 개수를 세어본다. 얼마나 복닥거릴까 걱정이라는 감정까지 더해져 내 마음은 처음 보는 이상한 색을 띠고 있었다. 체크인을 위해 벨을 누르니 여사장님이 나왔다. 회색 추리닝에 머리를 질끈 묶은 우람한 체격의 여사장님이었다. 짐을 옮기는 나에게 그녀는 대뜸 식사부터 물었다.
"저녁 먹었어요?"
"아니요"
"여기 근처 문 다 닫았는데"
대책 없는 대답을 하는 여사장님에게 나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안내받은 2층 방으로 들어갔다. 짧은 대화에서도 강단 있어 보이는 사장님의 목소리는 나를 긴장하게 했다. 방으로 들어오니 그 고요함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2인실 도미토리. 나의 옆 침대 밑에는 캐리어만 놓여있고 사람은 없었다. 방에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현관으로 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아래층 공용공간은 ㄷ자 바형 주방과 작은 테이블이 더해진 곳이었다. 노란 조명이 켜진 그곳에 사장님과 2명의 투숙객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멀뚱히 선채로 편의점 위치를 물었다. 대충 해준 설명을 대충 알아듣고는 방금 들어온 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바깥공기를 들이마신다. 내가 낄 수 없을 것 같은 그 어색함은 '역시 나는 낯선 사람은 불편해.'라는 생각으로 귀결시켰다. 게스트하우스를 고른 건 괜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 걸 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두 의견을 가지고 요란히 싸우다 보니 어느새 편의점에 도착해 있었다. 컵라면과 탄산수를 쥐어들고 먹고 갈까 말까를 두고 머릿속에서는 또 씨름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래도 여행 왔는데 서서 먹기는 싫어’라는 의견이 승리하여 돌아가기로 했다.
그 낯선 세 사람이 있는 주방에서 어색한 기운을 뚫어내고 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얕은 걱정을 안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주방으로 들어서 컵라면 포장을 뜯으며 부스럭 거리는 나에게 누군가 혼자 왔냐고 묻는다. 핑크카디건을 걸친 귀여운 소녀였다.
여행에 관한 생각과 여행 속 에피소드를 글로 풀어요.
<수상한 숙소> 편은 다음 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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