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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17. 2024

수상한 숙소 04.  핑크 카디건 소녀

  내 옆자리에 앉은 룸메이트. 문제의 핑크 카디건 소녀 역시 자신을 향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감정노동을 하는 그녀는 사람에게 지쳐 여행을 왔다고 했다. 학생인 줄 알았는데 어엿한 사회인이었다. 스스로를 더 알기 위해 한 달 여행을 했고 실제로 자신을 더 잘 돌보게 되었다고. 그녀는 늘 그대로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곳에 있는 자연에게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고 사진으로 담고 책을 읽다 그렇게 돌아오는 여행. 늘 분주했던 나와는 다른 여행을 하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 나는 사진도 늘 바쁘게 찍었는데 그녀는 마음으로 풍경을 한참을 담아낸 후 사진에 담고 있던 걸까. 새삼 아까 그녀의 사진을 못 본 게 아쉬웠다.


  그렇게 밀도 있게 사랑과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밤 12시가 되었다. 4시간이나 떠든 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독서이야기회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들어온다.


 핑크 카디건 소녀에 대한 마음도 어느새 누그러져 있었다. 씻고 방으로 들어온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침대맡 스탠드를 켜고 이불속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잠이 청하려 침대로 눕는 그녀에게 불빛이 불편하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 자기는 예민하지 않다며 편하게 읽으라 했다. 소리 나는 것도 괜찮다며 아침 일찍 움직여도 좋다고. 그 마음이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 날. 짧은 하룻밤 사이 그녀를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 한마디 건네본다.


"한 달이나 여행했는데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저는 알려진 곳은 싫어요. 그냥 막 걸어요. 그냥 걷다가 우연히 좋은 곳을 만나면 거기 있다 와요. 저는 그런 여행이 좋아요."


나는 여행을 흉내 내는 여행을 하고서는 ‘여행 뭐 별거 없네.’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여기 진짜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의 발자취를 쫓는 것이 아닌 내 길을 만들어가는 여행. 그녀는 나보다 한참 어른스러운 여행자였다. 그녀의 삶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과자 세상자를 꺼내 그녀의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사람들이랑 나눠먹을게요. 감사해요.”


그녀는 나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두 번째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에 관한 생각과 여행 속 에피소드를 글로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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