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밝고 따스함으로 열리는 날 세상천지 만물이 큰 기지개를 킨다. 땅속 깊숙이 움츠리고 있던 나무, 풀뿌리들은 생명수를 뽑아 올린다. 추위에 한껏 웅크리고 있던 동물들은 멀리 날아들 준비를 한다. 따뜻함을 찾아 들었던 우리는 길고 깊은 기지개 켜며 햇살을 따라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아직도 한겨울임에도 마음은 벌써 봄으로 내닫고 있다.
산속의 칼바람은 쨍하고 끝이 갈라지는 듯 차갑다. 눈이 함께 쓸려올 때면 세상 속에 홀로 존재 하는듯한 고독감에 젖기도 한다. 깊은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독감이기에 짜릿함이 더하다. 도시 속에 사는 이들은 수시로 흩어져 내리는 눈발이 을씨년스러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미 우리는 도시에 살 때부터 자연을 마음에 품고 살아서인지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변화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아직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추워야 할 겨울날을 이렇게 따뜻하게 보내도 되는 건지 긴가민가하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만큼의 추위를 담고 있다.
추운 겨울날, 거실 벽난로에서 붉게 타오르는 열기는 산속 칼바람을 따뜻한 봄바람으로 녹여놓는다. 덕분에 산속에서의 겨울맞이는 넉넉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은 벽난로를 관리하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기피한다. 혹시 불을 피우다 불이 나면 어쩌나하는 불안한 마음에 꺼린다.
남편과 나는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게 되면 한겨울 벽난로에 불을 피우며 불멍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소망은 현실이 되었고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벽난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덕분에 만족할만한 벽난로와 함께 하게 되었다. 산골의 겨울은 추운만큼 단열과 난방은 큰 염려거리가 된다. 난방으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지만 실내 난방보다는 주로 온수로만 사용하고 있다. 목조로 지은 집이라 단열이 잘되어 벽난로 하나만으로도 추운겨울을 거뜬히 지낼 수 있다. 추운 산속의 겨울을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든든한 벽난로 때문이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화력이 좋은 나무들이 필요하다. 돈을 주고 화력이 좋은 참나무를 살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 집 주변에는 대문만 열고나서면 부러진 나무 가지나 태풍에 넘어진 나무들로 땔감들이 가득하다. 창고에는 남편의 부지런함으로 땔감인 장작더미가 언제나 넉넉하게 쌓여 있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 난방은 물론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미거리들이 많다.
나는 찜질방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이 없는 휴일이나 주말이 되면 남편과 함께 소문난 찜질방을 찾아다니곤 했다. 뜨거운 한증막에서 즐기는 찜질도 좋지만 특히 숯찜질방을 좋아한다. 나무로 숯을 만든 후 뜨겁게 달아오른 숯방을 찜질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은 곳이다. 특히 추운 겨울에 먹을거리를 싸들고 가면 하루종일 놀기에는 더없이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뜨거운 숯방에서 땀을 쏙 빼고 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거기다 지글지글 뜨거운 숯불에 멀찍이 몸을 대고 있으면 그 또한 백미가 된다. 그런데 우리 집 벽난로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숯찜질방 발길을 끊었다. 집에서 편하게 찜질을 할 수 있는 벽난로 덕분이다. 붉은 불길이 타오르는 벽난로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숯방 찜질 저리가라는 듯 땀이 흐른다. 몸이 찌부둥 할 때도 벽난로 불길에 여기저기 몸을 돌려가면서 찜질을 하면 한층 몸이 가벼워진다. 벽난로 속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강렬한 불꽃의 광란을 보고 있자면 잡다한 생각의 티끌들이 한줌의 재로 타버린 듯 가볍다. 잠시나마 모든 걸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거기다 고구마, 밤을 구워 먹으면 긴긴 겨울밤 입을 즐겁게 해주는 간식거리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렇듯 벽난로는 우리들의 산속 추운 겨울을 함께하는 없어서는 안 될 찐친이다. 나의 벽난로 사랑이 깊어짐에 따라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깊어진다.
햇살이 유난히 따듯한 겨울날, 남편은 오늘도 낫과 톱을 들고 나무를 구하러 집을 나선다. 나는 남편이 돌아와서 허기진 배를 채울 간식을 준비한다.
살고 싶은 삶, 이것이 진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