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데 창고 주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가끔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야생고양이들을 보긴 하지만 인기척을 내지 않는데 자꾸 ‘야옹야옹’하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궁금한 마음에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창고 뒤편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가보니 몸집이 아주 작은 고양이가 잔뜩 웅크린 채로 겁먹은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자마자 쏜살같이 동편 산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어찌나 빠르던지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집 주변을 가끔 어슬렁거리던 큰 고양이하고는 털 무늬가 다르고 체구도 훨씬 작았다. 처음 본 아기고양이였다. 체구가 너무 작아 우리 동네 주변을 영역으로 대장노릇을 하는 큰 고양이가 해코지 할까봐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그 후 인연의 끈으로 아기고양이 ‘보리’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가정에서 잘 길들여진 집고양이들은 순종적이고 다정하다. 그것은 가축화가 됨으로써 인간의 다정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들로 돌아다니며 사는 야생 고양이들은 나름 자기들의 방식대로 생존을 이어간다. 먼저 활동 영역을 확보한 고양이가 주인행세를 하며 다른 고양이들은 함부로 침범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수놈이 자기 영역을 침범하였을 경우에는 사정없이 물어 죽여 버린다는 것이다.
재작년에 친구로부터 태어 난지 석 달 된 수놈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분양해 왔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마음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재롱을 피우고 귀여움을 부리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던 고양이 세 마리가 우리가 잠시 집을 비운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근처를 돌아다니다 저녁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그 후로 영영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집주변으로 영역을 두고 있는 큰 고양이가 헤치웠을거라고 했지만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야생이란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자연적 섭리가 있나 보다. 그 후로 고양이를 집 안에서 키우지 않는 한 집 밖에서는 키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반려묘 ‘보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고양이였다. 처음에는 우리를 보면 달아나기만 하다가 배가 고팠던지 우리가 내밀었던 먹을 것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료만 먹고 모습을 감추기를 몇 번, 그러다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들을 집사로 간택하게 되었다. ‘보리’는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우리 집 창고 안에 눌러 앉게 되었다. 그 후로 날씨가 추워질 것을 대비해 집이랑 매트 등으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창고 안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보리’는 눈에 띌 정도로 살이 찌고 몸집도 제법 커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가 마당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는 달려와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애정 표현을 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싫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보리’가 먼저 다가왔고 안보면 보고 싶은 아이로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보리’는 따뜻한 햇살 맞으며 장작더미에 올라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때로는 밀려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 모습이 보노라면 괜스레 건들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할 때도 있다. 고양이와 개는 친해지기 어렵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진돗개 ’콩‘이와 장난도 치며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언젠가부터 남편이 아침마다 ’콩‘이와 산책을 나갈 때 ’보리‘도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콩‘이가 느닷없이 곁에 있던 ’보리‘를 물고 마구 흔들어댔다. 순간 당황한 남편이 둘을 떼어놓으려고 하다가 ’보리‘ 발톱에 종아리가 긁혔다. 그러고도 한참을 물고 흔들다가 남편의 발길질에 ’보리‘를 놓았고 놀란 ’보리‘는 어디론가 달아나버린 것이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보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니 걱정은 한보따리가 되었다. ’보리‘가 그냥 집을 나갔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까? 상처난 몸으로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종일 혹여 ’보리‘가 돌아 왔을까봐 창고 안을 들락거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졸이며 ’보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워지니 걱정은 더 커졌고 남편이 잠자기 전에 창고에 가봐야겠다며 랜턴을 들고 나갔다. 잠시 후 남편이 급히 뛰어 들어오며 ’보리‘가 들어왔다는 것이 아닌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고 배가 홀쭉하다며 통조림을 줘야겠다고 한다. 집에 사놓은 고양이식 통조림을 들고 창고로 달려가 보니 집 안에 축 늘어진채 눈만 껌벅이며 누워 있다. 순간 집나간 자식이 돌아온 것마냥 얼마나 반갑던지. ’보리야 돌아와줘서 고마워!”하며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보리’도 반갑다는 듯 내 손에 머리를 부벼댄다.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콩’이의 공격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느라 지금껏 길에서 방황 했나보다. 두근거림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잘 추스려 가리라 믿는다. 예전처럼 밝고 건강한 ‘보리’의 모습을 기대한다.
“보리야!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