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난 듯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굵은 비가 또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빗줄기는 순식간에 마당 한가운데로 물길을 만들며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다. 마당에 마사토가 많이 섞여 있어서 평소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바로 스며들어 빠져 버린다. 이번 장마에 쏟아지는 비가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벌어지는 상황들이 낯설고 두렵기 조차하다.
폭우로 쏟아진 계곡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토사들과 섞여 누런 흙탕물로 변해버렸다. 한 줄기 폭포수 같은 장엄함을 싣고 굴러가는 물줄기는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이다.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물소리를 듣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쓸려갈 것 같은 두려움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바닥의 돌들은 모습을 잃은 지 오래, 오로지 물길만이 계곡을 삼키며 굴러간다. 내리는 비에 주변을 둘러볼 마음은 두려움으로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빗속을 뚫고 들려오는 짧은 산새소리의 지저귐이 바깥세상의 무사함을 전해준다.
이른 아침에 동네 이장님이 큰 비에 별일 없냐며 점검 차 전화를 했다. “우리는 별일 없는데 다른 곳은 별일 없는가요” 하고 물으니 다행히 우리 마근담은 피해가 없다고 한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며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집 주변으로 흩어져 사는 이웃들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심란한 마음을 달랜다.
내가 살고 있는 마근담은 지반이 튼튼하고 배수관공사가 잘 돼있어 산이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산속배수관은 할 일없이 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폭우가 내릴 때는 그 몫을 단단히 해낸다. 관을 통해 흘러 내려오는 빗물은 폭포수처럼 계곡 쪽으로 쏟아져 내린다. 산길인 임도를 타고 내려오는 빗물도 차가 제 속력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흘러내린다.
잠깐이라도 비가 개이면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마당으로 발을 내 딛는다. 키가 큰 화초들은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숙인 채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창 꽃을 피우던 송엽국은 넘쳐나는 물길에 잎이 녹아 누렇게 변하여 애처로운 모습으로 축 처져있다. 지난달에 심었던 목수국은 애기 손톱보다 작은 꽃망울로 세찬 빗줄기를 견뎌내며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듯 숨죽이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 울창한 숲도 말없이 거센 빗줄기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꿋꿋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스에서는 이번 폭우로 축구장 24배의 논과 밭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출하를 앞두고 있던 과일들이 순식간에 물에 잠겨버렸다. 손도 한번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내버려야하는 상황에 농부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무쇠마냥 굳어진 채 망연자실 할 뿐이다.
경북에는 산사태로 토사가 마을로 밀려 내려와 덮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14채의 전원주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불어난 계곡물에 한 사람이라도 구조하기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결국은 급류에 휩쓸려 생명을 다한 안타까운 일도 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하나뿐인 생명을 결코 남을 위해 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이 시대의 작은 영웅이다. 늦은 시간에 이웃사람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순식간에 집안으로 물이 들어차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며 “이제 우째 살꼬”라며 탄식 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지나가던 지하차도에 순식간에 물이 들어차 짧은 순간에 생사를 오고간 사람들의 억울함은 어찌 할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고 뭐라 할까
내가 20살쯤 되었을 때 태풍으로 집집마다 물이 차고 거리에는 물이 가슴께까지 들어차 걷기 힘들 정도였다. 퇴근하던 나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으로 겨우 도로를 빠져나와 온 몸이 물에 빠진 생쥐마냥 집으로 뛰어 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한동안 비만 오면 밖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동동거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물난리를 겪고 난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한동안 비에 대한 공포스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불보다 무서운 것이 물이라고 했다. 사전에 미리 사고에 대한 대비를 했더라면 큰 사고는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힘을 벗어난 천재지변은 오롯이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폭우를 예상하지 못했던 이번 장맛비는 기후 이상에서 오는 이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기후 이변으로 폭염과 폭우로 갈팡질팡 정신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앞으로의 세상이 더욱 염려스럽다.
긴 여름장마로 넘쳐나는 계곡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