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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Nov 13. 2024

준비가 8 할인 두 아이와 한 달 살기

그럼에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등굣길에서 앞서가던 딸아이를 같은 반 친구 수아가 부른다. 마침 수아 엄마도 아이 책가방을 맨 채 함께 가는 길이다.

“서영아, 너 방학 때 뭐 해?”

“나 방학하면 말레이시아 가서 한 달 있다가 와.”

그날 저녁, 수아 엄마에게 온 카톡:

아침에 서영이 만났는데 이번에 말레이시아 가신다면서요. 전 애 혼자 데리고 갈 자신이 없는데… 잘 다녀오시고 후기 들려주세요.  


3살 아래 동생과 한창 투닥거리고 있는 서영이를 부른다.

“너 혹시 친구들한테 말레이시아 간다고 자랑했어?”

“아니, 왜?”

“근데 어떻게 수아 엄마가 알아?”

“어~ 아침에 수아가 나한테 방학 때 뭐 할 거냐고 물어봐서 말레이시아 간다고 했는데 그때 수아 엄마가 옆에 있었어.”

”아, 그런 거구나.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자랑하고 다니지는 마.”

(뭐 별일 아니라는 듯이) “ 나도 그런 거 알아”


그랬다. 천기누설 - 큰 일을 앞두고 입방정을 떨면 늘 될 일도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남모르게 은밀히 준비했던 우리의 초등 5개년 한 달 살기 5개국, 그 첫걸음. 말레이시아 공항에 내려 무사히 입국 수속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비행기표를 결제한 그날부터 어느 날은 설렜다가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다가 어느 날은 덜컥 두려웠다가 감정의 널뛰기 속에 숨죽이며 반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새 학년이 시작되어 아이들을 전학시키고 마음 졸이며 두어 달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관사 생활 청산 후, 이내 정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을 서서히 누릴 수 있었다. 맛집이 숨어있는 우리 동네도 골목골목도 알아가며, 어디가 아프면 당황하지 않고 바로 찾아갈 수 있는 동네 병원들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또 아이들 등하굣길에 오며 가며 눈인사를 하게 되는 엄마들도 한 둘 늘어갔다. 그렇게 낯선 환경이 주는 불편함 대신 차츰 익숙한 환경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하는 일도 없이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모든 항공권은 오늘이 제일 싼 날이라 하니 지금이 적기겠지. 둘째 등원 후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와 사이판 여행 관련 요모조모를 검색해 보았다. 코로나를 겪는 사이 미달러 환율은 1300원을 가뿐히 넘었고,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는 코로나로 닫았던 빗장을 푸는데 미국령인 사이판은 아직도(사이판은 2023년 6월 무렵 코로나 백신 서류 제출 조항을 폐지함) 코로나 백신 증명서를 요구한다. 흠, 조금 귀찮은 걸. 그 사이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관광국이라서 그런지 코로나 3년 동안 타격이 커 폐허가 된 곳이 많다고도 한다. 한 달 동안 애 둘을 데리고 지낼 텐데 이 빠진 듯 듬성듬성 문을 닫은 가게들, 어딜 가려해도 차를 렌트해서 다녀야 하는 상황. 나 운전 못하는데… 슬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꼭 사이판이어야 했던 건 아니니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의 다른 나라를 찾아볼까. 영어가 통용되고 치안 상태가 좋으며 대중교통으로 생활하기 불편함이 없을 곳으로 말이다.    



찾았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오래전, 그러니까 미혼이었을 때 혼자 노을을 보려 코타키나발루에 갈까 망설인 적이 있다. 한데 그곳은 휴양지고 가족, 연인이 가는 장소라 혼자는 청승맞겠다 싶어 깨끗이 포기하고 삿포로로 방향을 튼 기억이 난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루는 여행지로 단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은 도시였다. 마치 인도네시아 발리는 꿈꿔보지만 자카르타를 굳이 여행의 목적지로 두지 않는 것처럼.


아시아 최고의 국제도시로 떠오르는 도시. 온건한 무슬림이 있어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도시. 말레이어 이외에도 영어, 중국어 통용. 물가는 한국대비 저렴. 22년 8월부터 코로나 백신접종 증명서 제시 불요 - 짧은 검색만으로도 내 요구 조건을 모두 갖춘 도시다. 중국계가 70프로 이상을 차지해서 나에게 이국적인 느낌을 전혀 주지 않은 싱가포르에 반해 바로 위에 있는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가 약 70프로를  차지한다고 하니(나머지 중국계 22, 인도계 7, 기타 외국인 비율) 더 끌린다. 종교 역시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힌두교로 다양하다. 이 나라야 말로 내가 아이들과 꼭 살아보고 싶은 나라다.


블로그 검색 몇 번으로 벌써 말레이시아에 다녀온 것처럼 피곤하다.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과 동시에 바로 결제해 놓고 당분간은 잊고 지내기로 했다. 흔히들 여행을 준비하기 한참 전부터 유명한 여행 카페에 가입해 정보 검색을 하는데 나는 그조차 가입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등업 규칙도 마음에 안 들거니와 어디가 맛집이네 하고 알려지면 한국인들이 죄다 몰리고 그곳은 꼭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걸 경계해서다. 여행은 뜻밖의 상황에서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하는 게 묘미지 익히 들어왔던 곳의 현장검증이 아니니까.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맘카페에 가입하지 않고 두 아이를 키우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여행 또한 그러할 테니. 그럼 나머지는 출국 한 달 전부터 차차 생각해 보기로.


출국을 보름여 앞두고 마음이 부산스러워졌다. 먼지묵은 여행용 가방을 꺼내 방 안쪽에 활짝 펼쳐놨다.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며 구비되어 있는 옷가지와 상비약은 일단 가방 안에 던져놓고, 사야 할 품목들은 따로 붉게 동그라미 표시를 해 두었다. 한 손은 작은 아이 손을, 다른 한 손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아야 하니 우리 세 사람에게 한 달 동안 허용된 수하물은 달랑 캐리어 하나(심지어 28 “인 줄 알았던 우리 집 캐리어는 공항에 도착해  24”라는 걸 알게 되었다)다. 짐을 최소화해야 하는 게 목표라 애들 입맛에 맞지 않을 현지음식을 걱정하며 밑반찬이며, 컵라면을  따로 사지는 않았다. 집에 남아있는 전장 김 한 봉지와 즉석밥 2개, 짜파게티 1개만 챙겼다. 지금 생각해도 용감한 엄마였지만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나의 선택은 같을 것 같다. 유난스럽게 한국인만 동남아 갈 때 챙긴다는 정수 필터는 생략하고 싶었지만 안 가져가면 후회한다는 후기들이 많아 고민했다. 결국 캐리어 지퍼를 잠그기 전에 마지막으로 샀다. 그거 하나 들어갈 공간은 그나마 남았고 결정적으로 아토피인 딸아이 걱정에 혹시나. 그리고 큰아이 배낭엔 세 자릿수 덧셈 뺄셈 30장과 2학년 수학 복습 문제집 한 권과 일기장을, 내 배낭엔 작은 아이용 한 자릿수 덧셈 뺄셈 30장과 10칸 국어노트 1권을 챙겨 놓았다.


새벽 5시 알람을 설정하고 밤새 옅은 잠에서 허우적 댔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마지막으로 입국 서류들을 점검하고 차가운 겨울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공항버스를 타려고 길을 나섰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면 짐스러워질 두꺼운 외투 대신 얇은 옷을 두어 벌 껴입고 나왔더니 아이들도 나도 오들오들 떨었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설렘과 흥분, 긴장 그리고 두려움이 뒤엉킨 떨림이었다. 잠들어 있는 새벽 거리 위로 최대한 조용히 캐리어를 끌고 가고 싶은데 보도블록에 드르럭 대는 바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 카운터로 향하는데 매끄러운 청사 바닥에 우리 캐리어만 달그닥, 기우뚱한다. 아뿔싸. 5년간 방치해 뒀던 캐리어의 바퀴가 삭아서 아까 보도블록에서 구르자마자 테두리가 떨어져 나갔나 보다. 수평이 맞지 않은 바퀴를 달래 가며 겨우 짐을 부쳤다.

우리, 한 달 동안 무사할 수 있을까.


여행도 장비발이구나. 조금만 걸어도 ‘엄마 다리 아파’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과, 바퀴 나간 캐리어를 미련하게 끌고 왔는데 전동 킥보드처럼 아이가 앉으면 자동으로 굴러가는 전동 캐리어를 공항에서 나는 처음 조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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