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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Nov 25. 2024

믿는 자 복을 받을 지어니

박복해지더라도 의심하며 살겠습니다.


마흔 하고도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 이제는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손에 꼽힐뿐더러 한 해 한 해 축하를 받는 것도 멋쩍어지는 나이다. 생일을 하루 앞둔 날 내 오랜 친구 진아에게 모바일 상품권이 도착했다. 책이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생각이 나서 기다렸다가 생일에 선물하려고 했다는 짧은 메시지도 함께였다. 요즘은 책값도 만만치 않아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그러다 도서관 가는 것도 귀찮아질 때는 책 읽기를 멀리하는 나였다. 가만, 나는 진아 생일을 그냥 넘어갔는데 고맙긴 하지만 받을 수 없겠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이었는데 검색해 보니 마침 도서관에 있다. 친구에겐 고마운 네 마음만 받고 도서관에서 꼭 빌려보겠으니 주소 입력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꼭 이 책을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문자가 한번 더 오고 결국 나는 이쯤이면 거절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받기로 했다.


주소를 입력하고 바로 다음 날 책이 배송되었다. 때마침 지지부진하게 읽고 있던 책이 있어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으리라 마음먹고 식탁 위에 두었다. 그날은 생일이라며 춘천 사는 고1단짝 수희가 마켓컬리로 감자빵을, 순창에 사는 고2단짝 지혜가 그리팅으로 사과를 보내줬다. 식탁 위 쌓여있는 감자빵과 사과 위에 책받침이 되어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책을 빼내 노트북 아래 깔아 두었다.  


진아는 나의 초등학교 친구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지금 내 딸아이 나이었을 때다. 짙눈개비가 흩날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동네 언니를 따라간 성당에서 내 또래의 아이가 오르간을 친다. 높은 천장에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에 매료된 나는 노란 솜잠바를 입고 있는 그 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듬해 3월, 그 아이와 나는 같은 반이 되었다. 성당에서 천사처럼 오르간을 치던 그 친구 이름은 진아였다. 나는 진아가 화를 내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남을 험담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3학년과 4학년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진아와 내가 언제나 붙어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친구와 놀 때에도 나는 진아가 나랑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며 진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시절을 보냈다. 내가 전학 가던 5학년 때, 같은 반이 아니었음에도 진아는 무척 아쉬워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다.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도 하고 성가 독창도 하고, 어린이 동요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친구, 나는 진아가 수녀가 되거나 아니면 음악선생님이 될 거라 친구의 미래를 그리며 헤어졌다.


대학 졸업을 마치고 연이은 시험의 낙방에 움츠려 들었던 어느 해 진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한다고 한다. 수녀가 될 줄 알았던 진아가 내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을 하다니. 소식을 듣고 축하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 앞섰던 것 같다. 더 놀라운 건 성당에서 만났을 줄 알았던 남편은 심지어 교회에 다닌단다. 만날 때마다 날 위해 기도해 준다던 친구, 그날 나는 친구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기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깊이깊이 기도했다.


다행스럽게도 결혼 후 친구의 신앙생활은 변함없이 깊었고, 종교 활동 역시 끊이지 않았던 듯했다. 아이들과 성당에 나가고 여전히 성당 피아노 반주를 치고 성서 모임도 나가고. 그저 주일 미사만 의무감에 가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신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고백하건데  지금의 난 무교의 삶을, 아니 더 솔직하자면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성당이 주는 웅장함과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경외감에 압도되어 30년 넘는 유신론자의 삶을 살았지만 언젠가부터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내가 믿고 싶은 신의 모습이 아닐지 모르겠단 불경스러운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됐다. 나의 이런 종교적 배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숱한 생각과 실망과 회의가 차곡차곡 퇴적된 결과다. 무신론자의 삶을 살더라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무신론자가 되면 당장 방탕해질 것 같지만 달라진 거라고는 일요일 아침에 조금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과거 신을 믿었을 때 세상의 좋고 나쁜 일들이 다 신의 뜻이었다고 믿고, 감사도 원망도 신에게서 찾으려고 했던데 반해 이제 나는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우연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일들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렇게 종교와 거리 두기의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오랜만에 진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 타지로 이사를 얼마 앞둔 때라 진아 얼굴을 한번 더 보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 나의 무교적 커밍아웃은 숨긴 채 성스럽게 성호를 긋고 식사 전 기도를 하고 친구와 비빔밥을 먹었다. 여전히 친구는 매주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그 사이 진아의 아이들은 십 대 청소년이 되어 엄마의 손이 덜 갈 만큼 자랐으며, 진아는 비정규직으로 시작했던 천주교 재단 사회복지시설의 정직원이 되어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친구는 느지막이 아이를 키우다 축난 내 아픈 몸은 어떻냐며 염려했고 나는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얘기했다. 조금은 어색하게 그렇지만 예의 그 따스함을 느끼며 식사를 마치고 근처 찻집으로 향했다. 진아의 성당 친한 언니가 암투병을 끝내고 완치되었다며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 굳이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 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침 근처에 있다 하니 그러자 했다. 2층에 자리한 찻집 창밖으로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걸 무심히 바라보다 대추차 위에 띄워진 잣알을 세어보다 어색한 기다림이 몇 분 흐를 때쯤 성당 언니가 왔다. 대체 나를 왜 만나고 싶었을지, 내게 왜 소개해주고 싶었을지의 궁금증은 몇 마디 대화를 하고서 이내 밝혀졌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신을 믿고, 늘 순수한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온 내 친구 진아. 성당 언니가 소개하는 영양제에 대한 그녀의 믿음 역시 그러했을 거다. 의심 없는 믿음, 그게 그녀를 지탱해 온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의심 많은 나는 전능하신 신도 등진 채 살아가고 있지만 친구를 위해 영양제 하나를 그 자리에서 주문했다. 아까 비빔밥을 계산한 친구에 대한 답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생각으로. 영양이 부실해 보이는 이 30일 치 영양제를 끝으로 30년이 넘는 친구와 나의 우정도 끝이 나는가. 바람에 한정 없이 흩날리는 은행잎을 맞으며 버스 정거장을 한 정거장 더 지나쳐 걸었다.  


그 이후로 진아에게 먼저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피하고 싶었다. 연락이 온다 한들 반갑지 않았다. 이십 대 중반의 여리한 진아가 키 작고 배 나온 삼십 대 중반의 직업도 그저 그런 아저씨에게 시집을 간다 할 때도 사실 싫었다. 수녀가 안되어도 좋으니 그 결혼은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축하한다는 말도 겨우 목구멍에서 끄집어냈다. 네가 먹고 효과를 봐서 꼭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던 그 영양제, 인터넷에 파는 여타의 영양제보다 성분이 나을 것도 없고 비싸기만 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왜 넌 모든 걸 그렇게 순순히, 다른 게 껴들어 갈 틈도 없이, 철석같이 믿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잠시 의심해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도, 아니다 싶을 땐 등을 돌려도 괜찮은데 말이다.


생일을 한참 지나고 읽던 책을 가까 스스로 마치고 진아가 선물로 보내준 책을 펼쳐 들었다. 고담하고 문아한 작가의 문장에 매료되어 매일 밤 아껴 읽었다. 지난밤 마지막 장을 마저 읽고 나서는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두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진아 생각이 났다. 왜 이 책을 꼭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는지, 무엇이 나와 이 책을 연관 짓게 했는지 궁금했다.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할 테다. 내가 요즘 글을 쓰고 있는데 나도 언젠가 이 작가와 같이 맑고 고요한 문장들을 써 내려가고 싶다고 영영 말하지 못할 테다. 이제 내 일상의 사소함을 나누기에 네 신념의 세계와 내 불신의 세계는 천당과 지옥만큼 아득한 거리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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