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첫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1

by 사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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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십 대를 살면서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다. 한국에 사는 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떡볶이도 있고 소주도 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게 다 백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백수가 된 나는 할 일이 없는 나머지 영어학원에 등록해버렸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DNA 깊숙이 심어져 분명히 다음 세대로 유전될 것 같다. 왜 잘해야 하는지 잘해서 어디다 써먹을 건지 알 수 없으면서도 항상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영어 학원 강사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Big city에 가봐야 해요."

한 번 밖으로 나가보면, 외국에 직접 가보면 안목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했다. 백수인 김에 영어 공부를 시작한 나는 영어 공부를 하는 김에 외국에 나가는 것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가도 되나. 고민을 했다. 다녀와서 어떻게 살 것인지 아무 계획도 없는데 무작정 나가도 되나 싶었다.


워킹 홀리데이는 젊은 날의 특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신청 대상이 만 30세 이하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 제한이 없는 국가도 있다고 하지만 많은 국가가 30세 전후로 연령 제한을 하고 있다. 만 30세가 끝나기 한 달 전, 나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이 시기를 놓치면 고민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호주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쉽고 빠르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워킹 비자를 추첨이나 선착순으로 발급하는 국가에 지원했다가는 아예 비자를 못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호주는 신청하기만 하면 바로 나오니 신청 기간이 한 달 남은 나에게 여지가 없었다.


비자 신청을 하려면 지정 병원에 방문하여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울산에 거주 중이었던 나는 지정병원이 있는 부산으로 가야했다. 하루종일 게으름을 부리며 백수의 나날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새벽 일찍 일어나 해운대행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백수로 살면서 매일 같이 게으름을 부렸는데, 이렇게 새벽행 버스를 타다니. 결국 사람은 자기가 할 일은 어떻게든 하나 보다."


그렇다면 게으름도 다 부릴만 해서 부린 것 아닐까. 열심히 합리화를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