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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Nov 16. 2023

등(背), 그리고 등(燈)

    등(背)이 노출되는 그 순간만큼은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없어진다. 무엇이 나를 덮치고 공격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짐이 나에게 지어질지 모르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늘 스스로 완벽하게 만든 등()을 꼭 쥐고 걸어간다. 나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등()불. 걸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지만 정작 나의 등(背)은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모습이다.


    나는 누군가가 내 등을 쓰다듬어 주고 감싸 주는 자세를 좋아한다.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등이 시리지 않다. 아무리 옷을 따뜻하게 입어도 두텁고 묵직한 누군가의 물리적인 보호보다 따스하고 든든한 게 있을까. 나의 등이 온전히 감싸지는 느낌에 나는 늘 설레고, 비로소 나를 내려놓을 용기가 생긴다. 든든하고 듬직하게 등을 감싸주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나의 짝꿍, 나의 편, 내 등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 온기와 든든함을 잊지 못한다. 두껍고 무거운 손으로 어깨를 있는 힘껏 감싸 주는 자세가 좋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과 무게감. 그 손길이 나에게 가장 따뜻한 안정감을 준다.

    

    내 등이 안전해지면 나는 지체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도전하며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더욱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앞으로 쏟을 수 있다. 중간에 몸이 뒤로 기울어져도 나는 넘어지지 않는다. 단단한 지지대가 있기 때문에 잠깐 기대 쉬는 것이 두렵지 않다.


    어제 너무나 오랜만에 누군가가 나의 등을 받쳐주었다. 그저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그 커다란 손이 나의 등을 지지해 주었고, 나는 나의 방향 그대로 걸어갔다. 그 사람도 술김에 용기가 났던 걸까. 우리 둘 다 더 이상 마음이 커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알딸딸한 술기운과 차가운 바람에 잠시나마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그렇게 걸었고, 내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 등을 맡기는 게 이렇게 든든한 기분이었지’.
‘너무 오랜만에 마음을 200% 놓고 아무런 짐 없이 걷고 있네 내가’

    나의 어깨는 늘 무겁고 마음은 꽤나 묵직하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늘 뻐근하고 피곤하다. 삶의 짐 그 어느 것도 내려놓지 못한다. 타인의 짐도 꽤나 많이 지고 있으면서 나 자신은 최소한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방비 상태의 몇 초는 나를 번쩍 깨어나게 했다. 단단한 팔이 나를 지탱해 주는 보호. 몇 년 만에 느낀 기분인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대도 이 온기를 기억할까, 아니면 술김에 스쳐 지나간 꿈같은 잔상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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