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발 앞에 프리지아를,
툭 터놓고 말할 곳 하나 없는 당신에게,
타인이 뿜어내는 회색 빛의 뿌연 연기.
짙고 숨이 턱 막히며 끈적이는 무언가를 그대로 받아내며 버텨내는 당신,
다들 어디서 그렇게 마음이 상했는지 당신만 보면 아기 새 마냥 달려와서 지독한 상처를 털어놓는다.
끈적하고 뾰족한 가시 박힌 그것을 당신에게 넘겨주며 그들은 점점 자유로워진다.
'이들도 살아야지', '이들도 어디 털어놓을 편한 곳이 있어야지' 싶다가도
매캐한 회색 연기에 당신이 어느 순간부터 숨을 쉬지 못하고 있을 때면
깊은숨 한 번 내쉬며 어깨를 가볍게 할 곳을 찾지 못해 그대로 버티지.
당신은 오늘도 그 연기를 꿀꺽 삼켜준다.
그들이 받은 역겨운 무언가가 고약하고 진득한 검은 액체가 되어 당신에게 뿜어질 때
당신은 피하지 않고 그 열기와 찢긴 마음을 고대로 받아준다.
끈적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당신의 마음도 점차 검고 너덜거리게 변한다.
당신은 신음소리를 꾹꾹 누르고 애써 삼키며 그들의 무거움을 받아 대신 져준다.
그들은 당신을 고약한 구덩이로 끌어들이고 가시덤불을 함께 품어달라며 내밀기를 서슴지 않는데,
당신도 모르는 곳에서, 당신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칼날로 당신 베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당신은 묵묵히 기꺼이 끌어안아 주는가. 왜 뱉지도, 저항 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자신을 내어주는가.
사랑인지 미련인지, 헌신인지 호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그대야, 누구 것인지 모를 상처와 쓴 독물을 온 몸에 대신 뒤집어쓰고 있는 그대야
너무나 쉽고 깊게 당신을 베고 후련하게 떠나는 상대의 뒷모습을 보며
검은색 핏빛 웅덩이속에 서서 달과 같이 빛나게 웃는 그대여,
지독하게 드러나 너덜거리고 검붉은 피 흘리는 당신의 모습을 어찌할까.
정작 그대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고자 옆에 머무는 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검붉은 웅덩이에 서서도 환하게 타오르는 당신,
들풀 하나에도 기뻐하는 당신에게 한평생 들풀 하나도 쥐어지지 않았으니
이제 내가 당신의 발 앞에 매일 꽃 한 송이를 바친다.
내가 당신을 경배하며 숭배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대, 내가 그대를 높이 들어 올려 사랑을 담아 입 맞추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