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ngsunlee
Jul 26. 2023
품앗이 여행
캐나다 온타리오주 알곤퀸 주립 공원 여행기
농촌의 일손이 모자라 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거들어줘서 품을 지고 갚는 아름다운 풍속문화가 우리네 선조들로부터 내려왔다. 빌려주고 갚는다라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시골의 정 같은 것이 바로 ' 품앗이 ' 다.
미국과 캐나다에 흩어져 살며 다섯 형제 중 자주 왕래를 하는 형제는 동숙이네라 말할 수 있다. 일 년 내내 날씨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사는 이점 덕분에 더욱 그러했다. 겨울이 긴 캐나다는 오랜 동면 기간 동안 움츠려 지내다 몸이 근질근질 함을 못 이겨 바쁜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면 따뜻한 남쪽지방을 향해 떠나기 시작하는데 이를 일컬어 '스노 버드, 라 부르는데 동숙이네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 되면 북쪽에서 내려오고 사막의 상막함을 벗어나 풍성함을 맛보고자 하면 남쪽에서 올라가고 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 품앗이 ' 여행을 하게 됐다. 그렇게 이루어진 관계가 특별한 가정사가 없는 한 매년 이루어져 와 작년 10월 캐나다를 방문하는 순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예상치도 못한 변수로 인해 이 또한 2년을 거른 다음 삐죽 열린 문을 비집고 온갖 무장을 갖추고 북쪽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떠난다 하면 ' 훌쩍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구속함 없이 자유로움으로 시작하는 멋은 이제 더 이상 부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9.11 사태로 인해 공항에서의 번거로움은 이제 일상화된 것은 물론이고 팬데믹이 이를 더해 비행기여행은 그야말로 여행면허를 따듯 가기 전부터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기후 온난화로 지구가 사막화된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 인간들 사이에도 점점 사막화됨을 보면서 실제로 내 일상을 긴장케 하며 번거롭게 함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은퇴 후 맞는 첫 번째 여행이라 스케줄도 넉넉히 잡고, 그동안 펜데믹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숨통을 조여 꼼짝달싹 못했던 구속에서 벗어나 그간에 심적 보상이나 하려는 듯 맘껏 누리며 후회 없는 여행이 되도록 준비하고 기다린 여행이었다.
어렸을 적 우연히 펼친 누나의 책갈피 안에 노란 은행잎이 풀 메긴 듯 빳빳한 채로 숨어 잠자고 있는 것을 볼 때 샛노란 은행나무가 파란 하늘 아래에서 살랑이는 바람과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잠시 가을의 설렘이 밀려오곤 했다.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서도 나비가 꽃들을 찾아 헤매 듯이 우리 또한 그 어떤 색깔들을 갈망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랬는지 꿩대신 닭이라고 매년 10월 중순이 되면 이 동네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3시간 거리에 자리한 '비숍 '을 찾아가 조금이나마 그 갈증을 해소하곤 한다.
일정이 10월 중순이라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캐나다 단풍관광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랐다. 토론토에서 2-3시간 거리에 ' 알곤퀸 '이라는 지역이 단풍여행지로 추천이 올라와 수첩에 '알곤퀸, 이라는 낯선 단어를 적어 놓았다.
' 알곤퀸 ' 온타리오 주립 공원.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신선한 새벽공기를 뚫고 북쪽을 향해 떠났다. 동트기 전 어두움이 벗겨질 듯이 밝아오는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 뭔지 모를 흥분을 돋운다.
지난번 방문 때 크림과 커피가 잘 조화된 한잔의 커피 덕분에 은신이가 사랑하게 된 ' 팀 홀턴 ' 에 들려 아침을 샀다. 팬데믹으로 인해 달리는 차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예전의 그 맛을 기대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캘리포니아와 달리 산이나 언덕이 없이 그저 숲과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회초리 나무같이 호리호리한 나무들이 빽빽이 찬 숲들이 달리는 차창옆으로 휙휙 지나간다. 반복되는 숲들이 지루할 때쯤 되면 뻥뚤린 호수가 나타나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켜주곤 한다.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점점 지나치는 풍광이 초록에서 연노랑으로 때론 불긋불긋 붉은색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떠나기 전 단풍의 농도를 체크하며 약간의 조바심을 안고 가던 길이라 더욱 단풍색깔 변화에 기대도 커지는 느낌이다.
알곤퀸에 가까워질수록 평원에서 능선으로 변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풍광도 장엄해지고 점점 유채색의 페스티벌로 들어감을 실감케 한다.
연노랑, 진노랑, 오렌지, 빨간색, 마젠타, 브라운, 그야말로 색깔의 대향연, 온갖 색깔들이 조화를 이룬 장면이 멀리서부터 미끄러져오듯 내게로 달려와 내 눈을 훑고 지나간다. 나는 색깔 세례를 받듯이 온몸으로 받고 지나치면 구도가 바뀌어 또 다른 배열로 조화를 이루며 어렸을 적 요지경을 보듯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어느덧 붉은 터널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나는 색과 하나 되어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숲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검게 보이는 호수물에 붓을 빨듯 붉은 동공을 빨고 나면 다시 진노랑 속으로 들어간다.
찬란한 태양빛에 반사되어 더욱 샛노란 숲과 대조를 이루며 우아한 자태를 한 검붉은 단풍이 뽐내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면 우리는 그 도도함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저 탄성만 지르고 만다.
거의 3시간에 걸친 드라이브를 끝에 도착한 곳은 숲가운데 자리한 ‘ 카누 레이크 '. 검푸른 호수 위에 연노랑 형광색 카누들이 떨어진 단풍잎이 물에 떠있듯 한가히 호수를 누빈다.
나무 그늘밑에 자리한 벤치를 찾아 앉아 숨을 고르듯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검푸른 호수에 비친 노란 숲과 새파란 하늘이 나를 마주한다. 노란 숲이 수평선에 매달려 거꾸로 서있고 그 밑으로 푸른 하늘 속에 빠져 헤엄치듯 새하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나는 잠시 커다란 만화경 속에 들어온 듯 황홀감에 빠진다. 무심코 지나가는 카누가 물결을 일으키면 숲과 하늘이 춤추듯 흔들리다 그 자리에 노란 숲과 구름이 자기 자리인양 자리 잡고 또 나를 마주한다.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잎사귀를 스치며 지나갈 때 반짝이며 내는 고요한 아우성이 적막을 뚫고 내 귀에 들리면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긴장의 힘을 빼며 기대어 눕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휴식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쌓아 말은 김밥. 잔잔한 호수의 뷰가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이제 속살을 헤치며 색깔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 팩 레이크 트레일 ' 약 1시간 소요거리의 둥그런 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인데 동숙의 발목이 성치 않아 딱 알맞은 코스였다.
숲 안으로 들어서자 피톤치드의 기운이 확 다가온다. 그늘진 숲 속 길을 따라가다가 머리를 들어 단풍나무를 보니 밝은 태양빛이 잎사귀를 투과하여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이 유럽의 대성당 홀웨이에 장식한 스테인 글라스를 처럼 아름다웠다.
아주 좁은 오솔길이 호수를 따라 구불구불 나있는데 그 길이 꽃길처럼 떨어진 단풍으로 수놓은 런너가 계속되다가 울룩불룩 튀어 올라온 뿌리들이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들거릴 정도로 미끄러워 가는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잠시 허리를 굽혀 아직도 싱싱해 보이는 단풍잎을 주워 가까이 관찰해 보니 그 색의 농도가 너무 진하고 고상한 것이 비로도의 감촉처럼 부드럽고 고귀해 보여 가져온 안 내지 갈피에 조심스럽게 보관한다. 온통 천지가 붉은 메이플 단풍, 때문에 왜 메이플 잎사귀를 캐나다 국기로 정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트레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루트를 오던 길과 달리 로컬길을 선택해 GPS를 따라 토론토로 향했다. 넓은 고속도로가 아닌 숲사이로 난 국도를 따라오게 되었는데 노랑, 오렌지, 빨간색의 터널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이따금씩 농가가 사이사이 자리해 더욱 동화에서나 보는 풍경들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멀고 먼 길을 운전을 할 뿐 아니라 삼성의 경험담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매부의 얼굴에 노을이 붉게 물들 때 멀리 지평선에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색깔로 인해 즐거움과 환희를 느끼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환희는 치유요 우리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하고 다시 힘을 얻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때 수집해 온 단풍잎이 액자에 박재되어 빛바랜 시간을 느끼게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색깔들이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인화되어 있어 내 추억을 더욱 컬러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