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그늘 숨결 그리고 작은 빛
몸을 써야만 버틸 수 있었고
땀이 흐르지 않으면
돈도 흐르지 않던 날들이었다.
고된 새벽,
터지는 햇살보다
선배의 말 없는 손짓이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실패한 가장의 이야기,
무너진 사람들의 유머,
무거운 것일수록 가벼운 말로 넘기던
그 현장의 온기들
나는 그 속에서
흙을 짚고 다시 일어섰고,
꿈은 줄었지만
버틸 힘은 자랐다.
그게 나를
사람으로,
어른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기억될 만큼 빛나진 못했지만,
사라질 만큼 가볍지도 않았다.
누군가 떠난 자리엔
항상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마주 잡았던 손의 온기,
다정한 눈빛 한 줄,
그림자처럼 조용히 깃든 마음 하나.
그래서 나도
내가 머문 자리마다
작은 뿌리 하나쯤은 남기고 싶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건 가지일 뿐,
흙 깊숙이 닿은 마음 하나는
쉽게 쓰러지지 않기에.
누군가의 삶이 기울어질 때
붙잡을 땅 한 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꽃이 아니라,
그 꽃을 다시 피울 수 있게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버티는 힘.
사람들이 모르게,
그러나 반드시 필요하게—
나는 그렇게
뿌리가 되고 싶었다.
햇빛은 늘 위에서만 내리쬐지 않기에,
나는 그늘이 되기도 했다.
지나온 삶의 무게가 누군가에겐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가 되길 바라며
그늘 아래 물 한 모금쯤 놓아두고 싶었다.
그리고 말보다 먼저 닿는 숨결로,
지친 하루의 틈에
고요히 스며들고 싶었다.
지나치지 않고,
머물러 주는 숨 같은 사람.
끝내는
작은 빛 하나쯤은 되고 싶었다.
모든 불이 꺼진 밤에도
마음 한편에서 은은히 남아
다시 걷게 하는 빛.
크게 빛나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은 불씨.
누구보다 먼저 앞서가기보다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크게 외치기보다
조용히, 끝까지 들어주는 귀가 되고 싶었다.
길을 잃었다고 믿었던 날들이
결국 나만의 길을 만들고 있었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줄 알았던 날들도
누군가에겐
“그때 당신이 있어서
내가 버틸 수 있었다”고
기억되는 날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의 흙을 고르고
그늘을 비추며,
햇살이 오래 머무를 자리를 만들었다.
살아간다는 건
그저 지나치는 일이 아니라,
잠시라도 누군가에게
쉼이 되는 사람이 되는 일.
내가 있었던 자리마다
조금 더 따뜻했기를,
조금은 덜 외로웠기를.
나는 오늘도
그 마음 하나로
또 하루를 살아낸다.
머물던 자리마다
무엇 하나는 남기고 싶었다—
뿌리,
그늘,
숨결,
그리고
작은 빛 하나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