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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SPARK Dec 25. 2023

상위 자아가 보내는 신호

서초동에서 로펌을 하는데 자꾸 매출이 떨어지고 있었다. 임원들과 의논해 봐도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서초동의 다른 로펌 변호사에게 물어봐도 다들 그렇다고 한다. 뭔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그게 뭔지 예리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하다. 갑자기 대회의실 출입문 통유리가 완전히 깨져 내려앉아있다. 나는 "뭐지? 주말에 누군가 상담하다가 발로 차서 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을 잡기 위해 CCTV를 확인했는데, 통유리문이 저절로 깨지는 장면이 찍혔다. 그냥 원인 모를 파동에 균열되어 깨지면서 내려앉은 것으로 판명됐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평일 저녁에 시간이 나서 친구가 속한 사회인야구팀에 용병으로 참여하게 됐다. 한 번도 그 경기장에서 게임을 한 적이 없어서 낯설었고, 야간경기에 비까지 내렸다. 그리고 익숙지 않은 3루를 보게 됐다. 빠른 타구가 순간 조명으로 들어갔고 빗물에 미끄러지면서 글러브를 맞고 튀어 얼굴을 강타했다.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짙게 멍들고 부었다. 사회인 야구를 10년 넘게 했는데, 처음 다쳤다. 하필 이 시기에....


이 두 가지 사건이 이틀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 내면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감지됐다. 어떤 존재가 나한테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던 중 한참 동안 연락이 없던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깐 만나자고 했다. 카페에서 만났는데, 엉망인 내 얼굴을 보고 웃는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변호사도 앉아서 의뢰인 맞는 시대가 끝났어요. 온라인 마케팅으로 홍보해야 돼요." 


나는 뇌 속에서 뭔가 시원하게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 이렇게 변화하라고 나한테 신호를 보내는 거구나.' 


나는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여러 책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온라인마케팅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입사한 김 과장이 그 홍보마케팅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변화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변화를 망설이고 있었다. 김 과장은 계속 "법조계 빼고 다 바뀌고 있어요. 얼른 바꾸셔야 합니다."라면서 채근하고 있던 중이었다. 내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우주 전체와 연결된 영적 존재인 내 상위자아가 신호를 보냈는지 모른다. 미래의 존재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신호를 보낸 것일 수 있다. 


나는 바로 김 과장과 로펌의 정체성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이 업계에서 누구나 알아봐 주는 로펌이 됐다. 변호사 수도 10배가량 늘었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실패와 성공을 거듭했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엄청났다. 남이 해주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배우면서 하는 것이라 우리만의 노하우가 쌓였다. 


나는 지금도 당시 나의 영적 존재가 나에게 여러 신호를 보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대회의실 통유리창문이 산산조각 나고, 대표가 사고로 얼굴을 다쳤다. 갑자기 찾아온 사람이 내가 새로운 결정을 하도록 단서를 주었다. 이런 신호들은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더 큰 곳으로 가서 변화를 모색해 봐!'라는 의미였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 정신적 존재, 영적 존재로 나뉜다. 영적 존재는 사실 믿음의 영역에 있는 존재다.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고 믿으면 없다.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영적 존재는 상위자아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 감각을 벗어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위자아는 하위자아가 자신을 인식해 주길 바란다. 서로 연결되길 바란다. 그래서 직관이란 것을 통해 신호를 보낸다. 어떤 경우에는 '동시성'이라는 현상으로 신호를 보낸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갑자기 발생하는 그런 '동시성' 말이다. 


상위자아가 보내는 신호로 익숙한 것은 꿈이다. 나 역시 꿈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받는다. 변호사 겸 사업가이다 보니 꿈에서 본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받기도 한다. 소송사건에 대한 풀이방법, 결과에 대한 예지몽을 꾸기도 한다. 


다음으로, 선택상황에서 자기도 모르는 직관이 발휘된다. 새로운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런 방법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갈림길에서 항상 가던 길이 아닌 곳으로 방향을 잡은 적이 있다. 무심결에 일어난 일이다. 그곳을 지나치자마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편히 먹고 운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쏙 드는 건물을 지나치게 됐다. 다음날에도 그 건물이 생각나서 일부러 그곳을 돌아가게 됐다.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데, 자꾸 눈길이 갔던 그 건물에 알아보니 제일 좋은 위치에 사무실이 비어 있다고 한다. 바로 계약하고 그곳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이상하게 사업이 잘 돼 계속 확장하게 됐다.


직관은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불필요한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는 더 쉬운 방법으로 안내한다. 내면의 지혜로운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직관은 갈등을 해결하거나 문제를 처리하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아주 선명한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수수께끼깥은 사진과 기호로 알려주기도 한다. 


직관은 내 예측과 맞지 않더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삶을 통찰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직관에 대해서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직관을 동반자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상위자아는 직접적인 방법이나 결과를 주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줄 우연 비슷한 기회를 준다. 예를 들면, 우연한 만남을 가장한 기회를 준다. 진짜 필요한 인물을 아주 우연히 만나게 해 준다. 우리 삶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동시성 그물로 촘촘히 짜여있고 연결돼 있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도 아마도 내면의 자아와 대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내 진정한 생각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올바른 명상은 걱정과 두려움, 의심을 덜어준다. 그런 하위인식들에 대한 주의로부터 우리 생각을 해방시켜 준다. 


상위자아와 연결을 시도하면 긍정성이 극대화되면서 장애물로 생각되던 것들이 모습을 감춘다. 그런 장애물도 그냥 삶의 여정에 있는 과정으로 느껴진다. 상위자아와 연결되기 위해 나 자신을 진화시키게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 나은 존재와 만나기 위해서는 나를 바꿔야 한다. 


상위자아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열정을 깨워준다. 나도 상위자아가 보내준 신호 덕분에 변화하는 열정을 얻었다. 두려움 없이 위험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었다. 내 안에 강력한 파동을 일으켰다. 열정은 내 안에서 감정의 크기와 세기를 증폭시킨다. 그 감정으로 큰 걸음으로 전진하게 된다. 


어떤 때는 상위자아는 자신과 연결시키기 위해 영적인 고립상태를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셀프고립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향인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외향인이라도 때로는 셀프고립이 필요하다. 상위자아 또는 영적자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조용히 혼자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을 뒤돌아보면 참 흔들림이 많았다. 굴곡이 많았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가 고립되어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나는 더 창의적이고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이 됐다. 크게 성장하는 시기였다. 지나고 보니 그런 시간이 나를 여기까지 끌어다준 것으로 생각된다. 삶에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나의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 인내력은 어느 정도인지 경험하는 계기도 됐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직관의 힘을 느껴보자. 그냥 우연으로 치부해 버리면 통찰할 기회를 잃게 된다. 상위자아가 부르는 신호로 여겨보자.



아침이슬(그림판그림) by INNER S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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