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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벅선생 Mar 08. 2024

금요일 오후

도서관에서 마음의 안정

나는 주말 부부다.

이혼 생각을 심심치 않게 하던 때도 있었긴 하지만

결혼 10년 넘어가니

싸우는 횟수도 줄고

나 같은 여자를 만나 힘든 점도 있겠다 싶어

측은지심 들기도 한다.

같이 산책을 하거나 수다를 떨 때는

서로 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손발이 잘 맞는구나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그가 주말을 보내기 위해 귀가하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마음이 울적하다.

직장인들이 일요일 저녁에 느끼는 울적함과

비슷한 것이다.

특히나 그는 금요일만 되면

평소보다 서둘러 퇴근해 집에 일찍 도착할 때가 많다.

아이가 집에 오기도 전에

그러니까 나의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들이닥치곤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가족을 위해 일주일간 고생하며 일했으니

당연한 권리라는 듯 밥을 내놓으라 한다.

금요일은 내가 직원이라고 치면 사장님 오시는 날이고

선생님이라고 치면 장학사님 오시는 날과 같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비위를 맞춰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를 들들 볶거나 괴롭히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내가

금요일만 되면 마음이 울적하고

부담스러움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와 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전통적인 성관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도 괜히 생색을 내거나 큰소리를 치고 싶어지고

나도 괜히 비위를 맞춰야 할 것 같은

그런 심리가 저절로 발현된다.

아무튼 그런 전통적 성관념이 체화된 나는

거기까지는 그래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내 불만은 아마도 그가

6시에 퇴근해 7시나 8시쯤 집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금요일 3시나 4시가 되면

불쑥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래 당신이 힘들게 일하고 온 건 알겠는데

내 계획 속 나의 일과시간은 아직 안 끝났는데

왜 마구 들어와 자기를 반겨주지 않으면 기분 나쁜 표시를

는지 그게 불만인 것 같다.

그래서 금요일엔 3시 4시쯤 되면

현관문이 열리는 게 두렵고

정말 현관문이 열리면 짜증이 난다.

애써 그런 마음을 감추고 웃으면서 그를 맞이하지만

내가 당장 하던 일을 멈추지 않으면

그는 금방 기분 나쁜 표시를 한다(나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아무튼 오늘도 나는 마음이 울적하던 중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내가 그 시간쯤 돼서 집을 나가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집 앞 도서관에서 하던 일을 다 마치고 그가 이미 귀가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면

내가 끔찍이 시러하는 현관문 열리는 그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잖아.

그도 생색을 내거나 큰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을 때

내가 거꾸로 들이닥치면 어떨까.

나도 힘들게 일하고 온 것이니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도서관이고

이 생각을 생각해 낸 나 자신이 뿌듯해

일은 안 하고 이 글을 쓴다.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

도서관 앞으로 이사오길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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