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벅선생 Jan 02. 2024

우울증이 나았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 우울증이 나았다는 것

우울증을 오래 앓았다. 그리고 이제 다 나았다.
이 두 문장을 확실하게 있을 때 우울증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건 뭐고, 완전히 나았다는 건 뭘까? 예전엔 나도 확신이 없었다. 우울증이 가장 최악으로 치달아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먹으면서도, 불면증과 거식증으로 피골이 상접하고 툭 치기만 해도 눈물을 주르르 떨구었으면서도 나는 내가 정말로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게 맞는지, 누구나 다 살다 보면 느끼는 힘든 감정을 정신 상태가 너무 나약한 나머지 우울증이라 주장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사려는 게 아닌지... 그런 의심을 늘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주변 사람에게 비밀로 하기도 했다. 우울증이라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고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던 거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우울증이 완전히 낫고 나서다(우울증이 어떻게 나았는지는 차차로 써나갈 생각이다). 우울증이 완전히 낫고 나니 예전에는 우울증이었고 이제는 나았다는 사실이 모르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안 좋은 일도 생기게 마련이고, 그럴 때 느끼는 힘든 감정들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우울증일 때 느끼는 우울한 감정과 너무나 다른 것이다.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해야 할까? 종이에 살짝 베인 것과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것 사이의 차이만큼 차이가 난다고 할까? 통제할 수 있는 나쁜 기분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감당할 수 없는 불행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더 이상 휘몰아치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우울증에 걸렸었고, 이제는 완전히 나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치매 환자가 치매 증상이 나타나고 있을 때는 본인이 치매인 줄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상적인 감정 상태가 되어서야 이전의 내 감정 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정상 상태일 때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사람을 죽음까지 내몰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럴 수 없기에 병인 것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그때는 의지가 약했고, 지금은 의지가 강한가? 그때는 정신 상태가 나약했고, 지금은 강인한가? 그렇지 않다. 운 나쁘게 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잘 치유되어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생각들,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각들은 분명히 있으므로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 자체가 환자의 의지와 정신 상태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 사실을 우울증을 앓다가 나아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정말 힘들었던 그때, 불면증으로 뜬눈으로 지새우던 수많은 밤마다 나는 네이버 검색창에 '우울하다' '죽고 싶다' 같은 말들을 쳐보곤 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너무나 외롭고 외로운 밤을 보내던, 1초 1초 살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던 그때의 나 같은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